Chapter 90
1.
아케보시 히마리에게 나나시 히이로는 문자 그대로 ‘신기한 아이’였다.
처음 그녀가 히이로- 당시에는 ‘실크’로 보았을 순간을 기억한다.
카이저 코퍼레이션의 개인 사병이 D.U에서 일으킨 소란. 실크가 본격적으로 키보토스에 알려지게 된 사건을 계기로 히마리는 실크에게 흥미를 가졌었다.
본능적인 이끌림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단순하게 지적인 호기심에 의한 인도였을까.
히마리는 어느새 실크의 행적을 뒤쫓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고, 며칠 간 철야를 반복하며 실크에 대해서 조사를 한 끝에 실크의 흔적을 발견하게 되었다.
최초의 흔적은 밀레니엄 근교의 뒷골목.
지금과는 다른 가면을 쓴 채, 누가 보아도 실크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몸놀림을 선보이는 소녀가 암거래를 행하던 헬멧단과 스케반을 습격하는 모습이 촬영된 CCTV의 기록이었다.
히마리는 그 흔적을 시작으로 실크의 사소한 정보들을 하나 둘 주워가며 그녀를 쫓았다.
실크를 쫓는건 결코 쉽지 않았다.
대체 무슨 수를 쓴 것인지 실크는 히어로 활동을 행할 순간을 제외하곤 전부 키보토스에 존재하는 모든 감시카메라의 사각에서만 움직였으니까.
그녀의 동선과 패턴, 습관이나 신체적 특징을 가늠하고자 해도 히마리에게 허락된 것은 오직 ‘악인을 벌하는, 가면을 쓴 괴인’이라는 정보 뿐.
거기서 히마리는 처음으로 생소한 충격을 받았다.
대체 어떻게 자신의 시선을 피하는 것인지, 하고.
또한 동시에 히마리는 실크를 뒤쫓는 이 행위에 묘한 즐거움과 기대감을 품기 시작했다.
한번 시험해보고 싶어진 것이다.
자신의 모든 능력을 총동원하여 이 영웅의 정체를 밝혀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당신은 대체 누구죠?’
혜성처럼 키보토스에 나타나 순식간에 빛나기 시작했다. 마치 이야기에 나오는 영웅처럼 말이다.
대체 어디서, 어떻게,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어째서 영웅으로 활동하는 것인지.
왜 악인을 벌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인지.
그 모든게 궁금해졌다.
만나보고 싶었다.
키보토스에서 최고의 기술력과 정보력을 자랑하는 밀레니엄의 모든 시스템을 꿰뚫는 영웅의 감각.
그것을 지닌 소녀와 한번쯤 만나 대화해보고 싶었다.
대화를 나누고 싶었고, 가면 아래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실크에 대해 알고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그래서 히마리는 더욱 실크의 흔적을 파고들어 그녀를 쫓아가기 시작했고, 사소한 정보들을 쌓고 또 쌓아갔다. 실크에게 가까워지기 위해서.
이는 일종의 집착이었고, 범인에겐 불가능한 광기나 다름 없는 시도였다.
사소한 정보. 미세한 파편. 희미한 흔적.
그 모든 정보들을 머릿속에 넣고, 모든 뿌리를 엮어 거대한 줄기로 바꾸어내는 방식의 해결법을 키보토스의 어느 누가 따라할 수 있을까.
남들은 하지 못할, 전지(全知)의 학위를 부여받은 그녀만이 가능한 추적법이었다.
무한에 가까운 기억력과 두뇌 회전력, 그리고 직관적 능력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오직 ‘아케보시 히마리’만이 가능한 방법.
그것을 통하여 히마리는 실크를 만났다.
실크의 본명이 ‘나나시 히이로’임을 알았다.
신기한 이름, 신기한 행동, 신기한 존재.
히마리에게 ‘나나시 히이로’란 그러한 아이였다.
이후, 그녀가 히마리에게 선보이는 모든 것은 히마리가 알지 못하는 세상의 것이었다.
히이로가 악인을 벌하는 과정을 보며.
히이로의 이 세상을 대하는 방식을 보며.
히이로가 선보이는 신념과 가치관을 보며.
아케보시 히마리의 세상은 바뀌었다.
정확히는, 히이로에게 물들었다.
많은 것을 알기에 생기는 허점이 있었다.
남들과는 다르기에 품는 고독함과 외로움이 있었다.
특별하기에 감추려는 결점이 그녀에게도 있었다.
하지만 실크- 나나시 히이로는 달랐다.
히마리가 진심으로 관점이, 영혼이 남다르다고 평하는 아이는 오직 나나시 히이로 뿐이었다.
나나시 히이로는 이해할 수 없는 아이였다.
자신보다 지능이 뛰어나지도 않고, 지식이 소유하고 있는 것도 아니며, 그저 이상만을 쫓는 바보같은 아이였지만 그 누구보다 현실을 바라보는 아이.
지독한 현실을 바꾸고자 힘쓰는 안쓰러운 아이.
아득한 벽 앞에서 좌절하지 않는 놀라운 아이.
끔찍한 고통 속에서 오히려 성장하는 신기한 아이.
전지의 학위를 지닌 자신조차 모르는 정보를 때때로 입 밖으로 내뱉어버리는 아이.
자신이라면 불가능이라 판단했을 일을, 무심코 해내버리는 아이.
히이로의 발자취를 바라보며 히마리는 생각했다.
많은 것을 알던 그녀에게 이토록 신비롭고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 이가 또 있었던가.
그 어떤 판단조차 내려놓고, ‘쫓아가고 싶다’라며 생각하게 만드는 인물이 또 있었던가.
나나시 히이로란, 지켜보면 볼수록 웃음이 나오는 아이였다.
때로는 기뻐서. 때로는 슬퍼서. 때로는 행복해서.
나나시 히이로. 실크의 뒤를 쫓아가다보면 어느새 그녀에게 동조되어 책임이란 것을 깨닫게 되는 히마리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쩌면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히마리가 실크에게 흥미를 지니고, 그녀의 흔적을 쫓아 다가가게 되는 일련의 과정이 모두.
전지(全知)의 지혜로도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운 인과의 끝에 두 사람은 만났고, 인연이 이어졌다.
그렇기에.
때문에 이런 이유에서.
‘제가 당신을 지키는 것이랍니다. 히이로.’
히마리는 실크를 지키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것은 도시를, 시민을 위한 실크의 헌신에 대한 보답이자 위로였고.
동시에 실크의 동료인 히마리만이 가능한, 남들을 위해 항상 고통에 몸을 던지는 실크를 지켜내는 방식이기도 했다.
그리고 히마리를 다른 의미에서 구원해주었던 실크에게 선사하는 자신의 구원이기도 했다.
히마리는 많은 것을 알기에, 남들이 그 사실을 모르도록 할 수 있었다.
히마리가 ‘아는 것’에는 어떻게 남들의 눈을 가리는가에 대한 방법 또한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하여, 히마리는 한때 자신이 실크의 뒤를 쫓아가며 보았던 모든 흔적을 지웠다.
사소한 흔적과 파편을 지워내며, 히마리는 실크가 모르는 장소에서 그들의 접근을 전부 차단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들에게 한번씩 비수를 꽂아넣으며 선명한 경고를 남겼다.
나의 소중한 후배에게 접근하지 말라며.
이 이상 선을 넘었다간 전부 박살내버리겠다며.
물밑에서 이루어진 이러한 공정이 있었기에 현실의 실크는 그 어떤 낌새를 느끼지않고 히어로 활동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다.
히마리는 그러한 실크의 순백한 모습을 바라보며 뿌듯함과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딱히 알아주지 못해 외롭다거나, 섭섭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자신의 후배는 언제나 히마리의 마음을 재빠르게 알아채곤 마땅한 애정을 보내주는 사랑스러운 아이였기에.
하지만.
[리오. 그녀가 너를 보냈군?]
[리오가 시켰나? 나와 싸워서 정보를 캐오라고. 그게 아니면 나를 제압해서 붙잡아오라고?]
때때로 그녀가 보낸 경고를 무시하고 접근해오는 무뢰배는 항상 나타나기 마련이었기에.
“…….”
히마리는 가슴이 철렁이는 것을 느꼈다.
이 감정은 리오의 접근을 막아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느낀 두려움이 아니었다. 불안감이나 공포와는 다른, 뜨겁고도 강렬한 감정이 일었다.
이것은… 분노였다.
자신의 경고를 망각한 채 다가온 오만한 권력자를 향한 반발심이었고, 어떠한 결심이기도 했다.
‘……리오. 제가 그렇게나 경고했지 않나요.’
히마리는 속으로 허탈하게 웃으며 그리 중얼거렸다.
그녀는 한 손으로 이마를 쓸어올리며 한숨을 푹 내쉴 수밖에 없었다.
톡- 톡-
히마리는 입술을 질근 깨물며 익숙한 휠체어의 손잡이를 두드렸다.
아무래도 자신의 경고가 너무나도 친절한 모양이었구나, 하며 히마리는 생각할 뿐이었다.
이처럼 순간적으로 품은 그녀의 생각은 히마리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난 그녀의 변화 중 하나였다.
히이로의 가치관과 신념이 히마리에게 물들면서 생겨난 하나의 변화. ‘소중한 사람’을 건드렸을 때 품고 마는 강박적인 분노와 냉철함.
히이로가 항상 하는- 어떻게 상대방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가, 하고 고민하는 모양새였다.
“후우…….”
히마리는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접었다.
어떻게 리오에게 다시금 경고를 할 것인가는 둘째치고 우선은 화면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했기에.
리오가 보낸 누군가와 부딫히는 히이로.
당혹스러운 상황이었지만 히마리는 딱히 히이로를 걱정하거나 하지 않았다.
예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히이로는 그 무엇보다 사람과의 싸움에 익숙해진 상황이었으니까.
그리고… 뭔가 알 수 없는 직감이 들기도 했다.
‘이건, 개입할 필요가 없어보이네요.’
히이로가 워낙 잘 싸우는 탓에 평소에도 투명 드론을 통해 전투에 개입할 일이 적기는 하나, 강적과의 싸움에선 항상 은밀하게 개입하는 히마리였다.
그런데 지금 명백히 강자라고 평가할만한 상대와의 싸움을 보면서도 히마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거… 개입할 이유가 있나? 하면서 말이다.
왜냐하면.
촤악─!
거미줄이 발사되는 소리와 함께, 벌써부터 상황은 종료될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기에.
2.
촤악─!
발사된 거미줄이 토키의 발을 묶었다.
발이 묶여버린 토키가 당황한 기색으로 발에 힘을 주었으나 거미줄은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거미줄을 한 발 더 발사하여 토키의 팔을 노렸다. 거미줄의 위력을 확인한 토키가 황급하게 몸을 비틀며 거미줄을 피했다.
“눈치가 빠르네.”
“……!”
하지만 이미 그 순간에 나는 토키에게 접근한지 오래였고, 나는 곧장 뒷돌려차기를 꽂아넣었다.
퍼억-!
토키가 양팔을 교차하여 내 발을 막아낸다.
타격이 적진않은지 희미한 신음이 토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발이 묶인 채, 물러나지도 못하고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낸 탓이었다.
다리를 회수하니 곧바로 양팔을 풀어내며 내게 팔을 휘두르려는 토키였지만, 나는 그녀가 마음대로 행동하게 해줄 정도로 마음이 넓지 않았다.
촤악─!
촤악─!
촤악─!
세 발의 거미줄이 발사되며 토키의 양 팔과 어깨를 묶었다. 마치 구속구를 찬 죄수와 같은 모양새로 묶여버린 토키의 모습이었다.
한 발의 거미줄로도 움직임이 묶인 토키였지만, 이젠 그런 움직임조차 마음껏 하지 못하게 되자 토키의 눈동자에 두려움과 당혹이 깃들었다.
이것으로 전투는 끝났다.
허무하리마치 간단하게 말이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
점차 그녀에게 다가가는 날 바라보며 토키의 눈빛이 무언가를 말하고싶다는 뉘앙스를 잔뜩 풍겨왔지만 나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내가 지금의 너를 상대로 자비롭게 전투에 임할거라고 생각했나? 아무것도 착용하지 않은 너를?”
“……?!”
내 말에 화들짝 놀라며 날 쳐다보는 토키.
그 말대로 지금 토키는 그저 가면과 어두운 복장만을 착용할 뿐, 그녀의 전용장비라 할 수 있는 ‘아비 에슈흐’는커녕 특수한 장비 하나 들고있지 않았다.
그야말로 맨몸으로 전투력 측정이나 하기 위해서 무작정 달려온 모양새인 것이다.
나는 의문과 경악으로 가득 찬 토키의 눈빛에 딱히 해명을 해주지않고 말을 이었다.
주먹을 쥔 채로 토키에게 천천히 다가가면서.
“리오에게 전해라.”
적의를 담아서, 그 어느 순간보다 선명하게.
내 의지가 전해지도록 목소리를 높였다.
이내, 내 주먹이 토키의 배 위에 얹어졌다.
기이한 힘의 흐름이 주먹 위에서 넘실거리기 시작한다. 그것을 느꼈는지 토키의 눈빛에 점차 두려움이라 부를만한 것이 깃들기 시작했으나-
“조만간, 내가 너를 찾아가겠다고.”
쩌엉─!!
토키가 완전히 두려움에 삼켜지기도 전에 나의 주먹에서 뻗어나간 힘이 그녀를 기절시켰다.
발경(發勁)의 묘리를 정통으로 얻어맞고 몸이 축 늘어진 토키를 받아들어 천천히 바닥에 눕혔다.
그리곤 토키의 얼굴 위에 씌여진 가면을 벗겨내자, 게임에서 보았던 익숙하고도 이쁜 얼굴이 드러났다. 가지런한 옅은 금발과 다소 냉소적이라는 인상의 미모. 묶은 머리를 푼다면 내 취향에 맞는 외모였다.
다만, 나는 알았다.
토키의 이 냉소적인 인상이 어떠한 사정으로 인해 형성된 것인지를.
그녀의 본래 성격이 어떠한 것인지를.
“……쯧.”
나는 토키에게 다시 가면을 씌어주며 혀를 찼다.
당장 자신이 구해야 할 아이가 눈앞에 있는데도 마음대로 구하지 못하는 상황에 한탄이 나왔기에.
“조만간 다시 보자꾸나.”
[……히이로.]
“그때는 반드시 리오에게서 구해주마.”
나는 토키의 머리를 한차례 쓰다듬곤 몸을 일으켰다.
아마, 멀지않은 미래에 토키와 다시 한번 싸워야 할 순간이 오리라.
또한, 그때는 이렇게 간단하게 제압할 순 없으리라.
그녀도, 나도, 마찬가지로 전력을 다할테니까.
“후우…….”
토키를 향한 안쓰러움에 한숨이 나왔다.
나는 속으로 언젠가는 토키를 반드시 구해내겠다, 결심하며 그 자리에서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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