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9
1.
키보토스의 밤은 언제나 소란스럽다.
해가 떠있는 낮에도 소란스럽기는 마찬가지지만, 늦은 밤의 키보토스는 다른 의미로 소란스러워진다.
낮에는 다양한 일로 소란스럽다면, 밤에는 주로 범죄와 사건들이 소란들의 주범이었으니까.
양지와 음지라는 단어가 구분되듯, 낮과 밤에 일어나는 일 또한 형태가 다른 경우가 많았다.
사람의 심리라는 것이 그런 법이다. 낮에는 양지에서의 일이 벌어지기에, 어두워진 이후에야 음지에서의 일을 시작해야만 한다는 불문율이 있는 것이다.
떳떳하지 못한 일을 어두워진 이후에서야 행한다.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는 늦은 밤과 새벽을 두고 ‘뒷세계 사람들의 아침’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그리고 또한, 이러한 음지의 활성화에 기여한 세력 하나가 키보토스에는 존재하였으니.
블랙마켓.
생텀타워 마비 사태에는 모든 불법적인 일들의 군생지가 되었고, 더욱 깊어진 음지의 그림자를 품는 둥지가 된 장소이자, 모든 암거래의 집결지.
경찰학교인 발키리마저 쉬이 소탕하지 못할 정도의 규모를 지닌 세력. 그들이 주도하는 음지의 활성화는 키보토스의 소란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이는, 당연하게도 내가 더욱 활발하게 활동하게 된 계기이자 목적이 되기도 했다.
-치직!
[아오바 서구 9번지에서 신고 접수. 인근 지소에선 해당 구역으로 종발해주시길 바랍니다.]
[여긴 아오바 지소. 현재 순환도로 이동 중이다. 9번지 상황 중계 바람.]
[거리 한복판에서 소요 사태 발생. 범인은 다수의 헬멧단. 즉시 교전 후, 제압해주시길 바랍니다.]
[여긴 아오바 지소. 확인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키보토스의 밤은 소란스럽다.
히마리의 도움을 받아 제작한 발키리 무전 해킹툴에서 활발하게 교전이 이루어지고 있는게 그 증거다.
“아오바 서구 9번지인가. 거리가 좀 되는걸.”
총기 소지가 합법화를 넘어, 상식이라는 수준에 이르는 키보토스에선 모든 소란에 총기와 폭발물이 동반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일개 개인이 일으킨 소란이든, 특정 집단이 일으킨 소란이든 언제나 밤낮 구분없이 뛰어다녀야만 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발키리 경찰학교.
이제는 나의 암묵적인 동료라고 해도 좋을, 키보토스의 치안을 지키는 수호자들이었다.
“출발해볼까.”
나는 오늘도 그들을 돕기 위해, 키보토스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저녁이 되자마자 밖으로 나섰다.
촤악─!
경찰이 지상에서 순찰을 한다면 나는 도시를 넘나들며 상공에서 순찰을 개시한다.
그리고 간혹 무전이 들려온다면, 사건의 중요도를 따지고 개입하거나 발키리에게 맡기거나를 결정한다.
따로 정해놓지는 않았지만, 이는 발키리와 나의 암묵적인 협력 방식이었다.
내가 그들의 무전을 해킹해서 듣고있다는 사실을 몇 몇은 아는지 간혹가다가 ‘신속히 해결 가능. 지원은 불필요하다. 오지 말도록.’이라며 내게 은근슬쩍 소식을 전달하는 경우도 꽤 있었기에.
하지만, 오늘 발생한 소요 사태를 두고 발키리는 지원을 바란다는 무전만을 흘려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래도 이번 일은 규모가 꽤 큰 모양인데요?”
[……그러게요. 저번과는 달리 말이 없군요. 일반적인 소요 사태는 아닌걸까요?]
“일단 가보죠. 거리도 가까우니까요.”
발키리에서 나를 대상으로 한 추가 정보를 제시하지 않고 지원을 요청하는 것.
이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
하나는 실제로 소요 사태의 규모가 큰 경우. 내가 개입하지 않으면 안되는 규모의 일이 발생하였을 때, 나에게 은근슬쩍 지원을 요청하는 경우였다.
또 하나는 무전을 하는 학생이 나의 존재를 모를 경우였다. 내가 활발히 활동을 하기는 했지만, 내가 발키리의 무전을 몰래 듣고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아오바 지소는 나랑 몇 번이고 함께 사건을 해결했던 곳인데? 거기다… 거기 소장이 보낸 무전으로 몇 번 도움을 준 적도 있었고.’
어째서인지, 묘한 직감이 드는 것이다.
발키리를 도와주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 아닌, 마치 적진으로 내가 직접 발을 들이는 듯한 긴장감.
당장 어젯밤에도 느끼지 못한 감각이 나를 붙잡았다.
하루 아침에 무언가가 변화한 것일까?
과연 내 초감각의 변화인 것일까, 그게 아니면…….
“선배. 잠시만요.”
[……? 무슨 일인가요?]
“뭔가 이상합니다. 느낌이… 안좋아요.”
[네?]
나는 아오바 지구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히마리를 불렀다.
“잠시, 잠시만요.”
[왜 그러시나요? 무슨 일이 생긴건가요?]
“잠깐만요. 아주 잠깐만 시간을 주세요.”
당황해하는 히마리를 뒤로 한 채, 나는 자리에 서서 이 기이한 감각을 두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대체 뭐가 문제지?’
나의 초감각은 항상 ‘결과론적’인 감각을 보내온다.
일반적인 감각과 직감의 활성화라는 능력도 있으나, 초감각의 가장 강력한 효능은 결국 ‘미래예지’에 가까운 위기 감지 능력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위기 감지를 실시간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 말은 곧, 나에게 위기가 다가온다는 것이고 동시에 위기를 맞이하게 되는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무엇이 원인인가. 왜 초감각은 위기를 알려오는가.
발키리에게 지원을 가는 과정에서 왜 초감각이 발현되었는가.
무엇이 나를 위협하고, 어떻게 피해야만 하지?
초감각은 언제나 내게 불안감을 안겨준다. 하지만 이를 두고 단순히 두려워만 하는 것은 하수의 방식이었다. 이를 깊게 파고들어 진상을 밝혀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갖춰야 할 자세였다.
그렇기에 나는 언제나 초감각이 알려준 ‘위기’라는 결과를 두고, 그 원인을, 인과를 추측했다.
‘왜’라는 의문에서부터 시작된 의문의 가지를 넓고 길게 뻗어내어 수많은 파편적인 정보를 휘감는다.
발키리.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역시나 이것이리라.
그렇다면 나는 어째서 발키리를 돕기 위해서 이동하던 중에 위기감을 느꼈는가.
발키리가 나를 공격하는 것인가? 혹은, 이 무전부터가 나를 함정에 빠트리기 위한 덫이었나?
왜?
발키리가 나를 공격할 이유가 있는가?
지금까지 나를 공적으로 삼고, 붙잡으려는 시도가 있기는 했지만 나의 꾸준한 활동에 발키리도 어느 순간부터는 내 활동을 그저 관망할 뿐이었다.
때때로 도움을 주기도 했었고 말이다. 그런데…….
“발키리가 나를 배신한다고? 이 시점에?”
[네-?!]
“아직 확신을 내릴 순 없습니다. 하지만 뭔가-”
[방금 뭔가 직감을 느낀거군요. 그렇죠?]
“…네.”
히마리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할 수 없는 결론이었다. 하지만 초감각은 내게 언제나 이해할 수 없는 힘을 안겨주는 능력이다.
나의 능력을 의심할 수는 없었다. 내가 의심할 것은 자신이 내린 판단이 옳은지 틀린지에 관한 것.
“……확인해봅시다. 저의 판단이 맞는지, 틀린지.”
[조심하세요. 만약 실크의 가설이 맞다면…….]
“네.”
앞으로 히어로 활동이 버거워질 것이다.
나의 활동을 암묵적으로 승인해주던 발키리가 적으로 돌아선다? 활동에 온갖 제약이 생기리라. 절로 피곤해지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자신의 판단이 틀렸기를 간절히 빌며, 아오바 지구로 향했다.
2.
“시발.”
[쓰읍! 나쁜 말 안돼요!]
“아. 죄송. 그런데 저거…….”
[네. 정말 추측대로네요. 단순히 헬멧단을 상대하기 위한 수준의 장비가 아니에요.]
“…….”
대체 왜?
허탈한 감정을 느끼며 그리 중얼거렸다.
나는 고층 건물 위에서 한참이 지나도록 아오바 지구의 소요 사태를 일찍이 정리한 뒤 나를 기다리는 발키리 학생들을 내려다보았다.
초감각은 여전히 말하고 있었다.
여기서 아래로 내려가게 된다면 나는 발키리 학생들과 힘겨운 싸움을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
나는 입술을 질근 깨물며 눈매를 팍 찌푸렸다.
‘분명. 분명히 무언가 이유가 있어.’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내게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던 발키리 학생들이다. 저 아이들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돌변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래야만 했다. 나는 간절함을 담아 그리 기도했다.
이윽고 나는 천천히, 발키리 학생들을 관찰했다.
‘……표정이 안좋은데? 왜 저러지?’
건물 아래에서 대기하는 학생들의 표정은 그리 평온해보이지도 않았다.
불편하고, 짜증나고, 거북한 듯한 감정이 표정에 고스란히 드러나있는 학생들의 얼굴들이 보인다.
“단순히 짜증이 났다든가 하는 표정은 아닌데요?”
[으음. 확실히. 불안해하면서도 어딘가 죄책감을 느낀다는 기색이 역력하네요.]
“죄책감, 인가요.”
저 아이들이 죄책감을 느낄 이유는 무엇인가.
나를 붙잡기 위해 대기하는 저들이 왜 죄책감을 느낀는가. 그것도 학생 전원이.
[저 행동들이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는거죠.]
“……그 말은?”
[아무래도 발키리의 상부, 혹은 그 위의 인물이 실크 당신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모양이네요. 모든 발키리 지소에 저런 지시를 내릴 정도라면.]
“…….”
현재 자신이 하는 행동을 불편해한다.
일개 개인이 아닌, 모두가 저러한 행태를 보인다는 것은 저 행동들이 그녀들의 본의가 아니라는 뜻.
그렇다면…….
“하.”
[뭔가 알아냈나요, 실크?]
“네. 대충 알겠네요.”
거기까지 생각이 도달하자 이번 일의 배후를 알아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 시기에 발키리에게 저런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상부의 인물은 내가 알기론 한 명밖에 없었으니까.
“총학생회.”
[……네? 초, 총학생회라고요?]
물론 총학생회 전체의 의견은 아닐 것이다.
총학생회의 휘하 부서.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방위실’의 누군가가 나를 불편해하고 있으리라.
이 추측이 맞다면 지금 상황도 이해가 간다.
이렇게 은밀하고도 치졸한 방식은, 실로 그녀다운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슬슬 움직이기 시작하는구나, 카야.’
키보토스의 패권을 쥐고자 하는 소녀.
향후 ‘카이저 코퍼레이션’과 손을- 어쩌면 이 시점에 이미 잡았을지도 –잡고, 쿠데타를 일으켜 실질적인 실권을 잡기까지 하는 위정자.
실종된 총학생회장 같은 ‘초인’이 되고자 하는 자.
시라누이 카야.
그녀가 물밑에서 행동을 개시했다.
…….
요즘따라 나한테 관심을 가지는 권력자가 참 많네.
하지만 딱히 걱정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옛날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면 될 일이죠.”
[옛날 방식, 인가요……?]
“아직 발키리와 친해지지 못했을 시기의 제가 자주 써먹던 방식입니다. 게헨나에서도 써먹었죠.”
[……설마.]
네. 그 설마일 겁니다.
나는 이제부터 다시 쿠팡맨이 된다.
다만 배송하는 것은 오로지 악당일 뿐이지.
3.
“후우. 이걸로 벌써 일곱 건.”
[발키리도 슬슬 눈치챈 모양이네요. 저희가 그쪽 사정을 눈치챘다는 걸요.]
“아무래도 그렇죠? 제가 대놓고 피해다니니까.”
내가 발키리를 대놓고 피해다닌지 몇 시간이 지나니 슬슬 발키리 쪽에서도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모르나, 전처럼 나를 무전으로 꾀어내려는 시도는 확 줄어들었다.
의미가 없다는걸 알아챈 것이다.
눈치가 빠른 몇몇 이들은 내 감각이 보통이 아님을 알기에 이런 단순한 방식이 먹히지 않는다는걸 알겠지. 그렇기에 쉽게 포기하게 되었으리라.
“다만… 조금 피곤하긴 하네요. 전에는 발키리랑 협력하는 일이 많았는데, 하아…….”
[저도 최선을 다해 도와드릴테니 힘내요, 히이로.]
“히히. 밀레니엄 최고의 청초계 미소녀이자, 절벽 위의 꽃인 히마리 선배가 해주시는 응원이라 그런지 힘이 나는데요?”
[……그, 그런가요. 크흠! 다행이네요, 히이로.]
아무래도 남의 입에서 듣는 칭찬과 자신이 직접 하는 자뻑은 경우가 남다른지 부끄러워하는 히마리였다.
나는 피식 웃으며 기지개를 폈다.
이제 슬슬 복귀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감각도 별다른 사건을 감지하지 않고 있기도 했기에.
그리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순간.
“이제 슬슬 돌아가야-”
-찌릿!
그 순간, 초감각이 번뜩이며 피로에 가라앉던 나의 정신을 일깨웠다.
“……?!”
[히이로? 무슨 일이-]
아까 느꼈던 감각과는 다른 감각이 날 사로잡았다.
비유하자면, 네루와 처음 만났을 순간에 느낀 강적을 눈앞에 둔 감각. 순식간에 긴장감이 치밀었다.
‘오른쪽!’
“이런 씹……!”
그에 본능적으로 빠르게 몸을 일으키고,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황급히 낙법을 취하며 오른손을 들어올려 가면 측면의 버튼을 눌렀다.
촤르륵-
푸르른 반투명 화면만을 띄우던 가면이 빛을 토해내며 무수한 정보들의 향현을 이루기 시작한다.
감각에 동조되어 기능이 확장된 가면이 빠르게 일대의 정보들을 흡입하고 내게 전달해오기 시작했다.
가면에 떠오르는 수많은 홀로그램들.
동시에 어두운 시야를 밝히는 야간투시 기능.
내가 있던 곳을 내려찍는 습격자를 인식하고, 저장된 데이터베이스를 뒤져가며 신원을 특정한다.
그러나 이윽고 화면에 떠오르는건.
[특정 불가]
상대방에 대한 정보 부족 알림이었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나는 깜짝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으며 상대에게 물었다.
“누구냐.”
“…….”
“왜 나를 습격했지?”
“…….”
“대답하지 않을 생각인가.”
상대방에게 물어도 대답을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자세를 취하며, 긴장을 머금고 상대방을 노려보았다.
어떻게 내 위치를 특정하고, 습격했는지는 둘째치고, 냉정히 현재 상황을 분석해보았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나에게 공격을 감행할만한 인물은 누가 있는가. 그리고 이 정도의 위기감을 일으킬 정도의 강자 중에서 나를 공격할만한 인물은?
거기다… 가면을 써서 얼굴은 가려졌지만 희미하게 드러난 금발 머리칼이 보였다.
금발. 습격자. 그리고 신원을 파악할 수 없는 인물.
이 정도의 실력을 지닌 인물은 누구일까?
나의 위치를 특정할만한 정보력을 지닌 인물 중에서 이 정도로 강자가 있던가?
있었다.
결론은 금방 내려졌다.
“리오. 그녀가 너를 보냈군?”
“……!”
“왜. 내가 알아챌 줄은 몰랐던 모양이지?”
내 물음에 상대방의 몸이 한차례 움찔거렸다.
그리곤 이내, 나에게로 쏟아지는 기세와 살기가 한층 더 짙어지기에 이르렀다.
내 초감각이 위험 신호를 보낼 정도로.
하.
헛웃음이 내뱉어졌다.
아무래도 리오는 직접 나를 상대해서 정보를 캐내기로 결정한 모양이다.
그러니 저 아이를 보낸 것이리라.
‘이 시점에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나는 한숨을 내뱉으며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리오가 시켰나? 나와 싸워서 정보를 캐오라고. 그게 아니면 나를 제압해서 붙잡아오라고?”
“…….”
“그래. 대답할 수는 없다, 이건가.”
기대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리 중얼거리며 자세를 잡았다.
“시작하자고.”
“…….”
내 말에 상대방- ‘아스마 토키’는 마찬가지로 전투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한참이나 길어질 모양이다.
나는 속으로 한탄하며 토키에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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