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8
1.
처참하게 패배했다.
아니, 패배를 넘어 농락당했다.
“…….”
나는 떨리는 눈동자로 눈 앞 화면에 떠오른 K.O. 타이틀을 바라보았다.
바닥에 누워있는 내 캐릭터와 그 앞에서 승리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모이의 캐릭터. 치사한 방식으로 승리해놓고 옆에서 날 놀리는 모모이의 목소리까지.
하나같이 짜증이 나는 요소들이었다.
“아하하핫! 고수가 하수를 순식간에 제압해 격의 차이를 느끼게한다! 이거야말로 격투 게임의 진면모지! 어때? 뉴비인 히이로에겐 너무 어려웠나~?”
“어, 언니… 그만 놀려……. 이러다가 뉴비- 히이로 씨가 게임에 정 떨어지면 어쩌려고 그래……!”
“어? 에이 설마…. 화, 화난거 아니지. 히이로……?”
“…….”
아니, 짜증이 났다기에는 분했다.
무엇보다 아무것도 못하고 패배했다는 사실이 제 실력이 모모이만도 못하는 하수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만 같아서 억울했다.
딱히 옆에서 티배깅이나 하는 모모이에게 패배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던가, 자존심이 상한다던가, 하는 그런 이유는 아니었다.
물론, 유즈가 상대였다면 수긍하기는 했겠지만…….
‘방금건 경우가 달라.’
나는 어째서 모모이에게 패배했는가.
모모이의 손이 너무나 빨라서 인지를 못했다?
처음 해보는 게임인 탓에 적응하지 못했다?
오락실에 들어온 뒤, 혼란을 호소하던 초감각이 아직 안정되지 않았기에?
아니다. 전부 아니다.
보통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게임 화면에서 순식간에 치러지는 공방을 눈으로 쫓기란 불가능하다.
상위 몇프로에 속하는 ‘진짜 고수’나 선천적인 반사신경을 지닌 이들이 아니라면 일반적인 뇌의 성능으론 전자세계 속의 속도를 따라가기 벅찬 것이다.
하지만.
초감각을 지닌 나에겐 화면 너머의 공방이 아주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듯 전부 읽혔다.
따라서 상대 캐릭터의 공격 모션을 빠르게 포착하고, 모모이가 알려준 대로 방어 모션을 취하기 위해 패드를 조작했다.
하지만 결과는? 공격을 허용당했다.
어째서?
모모이에게 패배당하는 그 순간까지 의문이었으나 나는 금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성능이 떨어지는건 반대 쪽이었나.’
초감각으로 발달된 반사신경이 게임 속 처리속도를 아득히 능가했다. 그래서 내 캐릭터의 행동도, 상대방의 행동도, 어떤 행동을 취하든 내가 원하는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마치 렉이 걸리는 게임 화면을 조작하니 행동이 한차례 늦게 나가는 것과 같은 원리였다.
그것을 깨닫고, 초감각의 인지 속도를 감안하여 타이밍을 조절하려고 했을 순간에는 이미 진작에 모모이가 승기를 잡은 시점이었다.
저 비열하고 치사한 기술, ‘붕권’으로 말이다.
한번 패턴에 휘말리니, 초감각을 켜둔 상태로 타이밍 맞게 반응하기가 어려운 기술이었다.
“한판만 더. 다시 해보자. 대충 알았어.”
“어? 으, 응! 그래……!”
이번에는 조금 더 초감각을 세밀하게 조작해보자.
그리 생각하며 나는 모모이에게 다시 대전을 신청했다.
그리고 이내, 게임이 끝나고.
“어?”
“…엥?”
모모이와 미도, 두 사람의 얼빠진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퍼졌다. 나는 씨익 웃으며 화면을 보았다.
[ K.O. ]
화면에는 나의 승리를 가르키는 두 음절의 알파벳이 큼지막하게 떠올라있었다.
쉽다 쉬워. 깨달음을 얻은 나에겐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흐흥.”
모모이의 얼빠진 표정을 바라보며 나는 기쁨에 차 콧김을 내뿜었다. 이러면 안되는데 저절로 입가가 풀어진다. 이게 승리의 감각? 아까 모모이가 나를 그렇게나 놀려댄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자, 잠깐만! 히이로, 한판만 더 하자!”
“오케이. 다시 해보자.”
“이익…! 이번엔 절대로 안질거야……!”
이번엔 반대로 모모이가 내게 재경기를 부탁해왔다.
나는 이전과 달리 여유가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물론.
[ K.O. ]
초감각을 조율하는 법을 깨달은 나를 상대로 결과가 달라지는 일은 없었지만.
“이건 말도 안돼애애애!!!”
“…언니 게임 개못하네. 부끄럽다, 부끄러워.”
“푸핫!”
“이이익……! 그럼, 미도리 너도 해보라고-!!”
“어, 어?”
“그래. 미도리도 나랑 붙어보자.”
[ K.O. ]
“하아아─?! 바, 방금 어떻게 막은……?!”
“뭐야! 갑자기 왜 이렇게 잘해진거냐고! 말도 안돼!!”
“반응속도 미친거 아니야?!”
“거 봐! 얘 갑자기 한판만에 각성했다고! 괴물이야?!”
어허, 괴물이라니.
나는 혀를 차며 고개를 휙휙 저었다.
그리곤 최대한 두 사람을 약올리기 위한 대사를 입에 담았다.
“힘의 차이가 느껴지십니까, 휴먼?”
“크아아아악!!”
“크아아아아악!!!”
두 사람은 그대로 침몰하여 주저앉았다.
반응 찰진거 봐라. 개재밌다.
“아 재밌었다. 이제 다음 게임 하러가자.”
“응…….”
“그래…….”
침울하게 대답하는 두 사람을 보며 나는 피식 웃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슈퍼히어로의 초감각 맛이 어떠냐. 어질어질하지?
동시에 깨달았다.
평소에 켜두던 초감각마저 일반적인 사람의 감각을 아득치 초월하는 성능이구나, 하고 말이다.
아무래도 초감각을 보다 더 세밀하게 조작하기 위한 훈련을 조만간 실시해야 할 듯했다.
2.
“다음엔 이거 어때?”
다음으로 내가 가르킨건 ‘에어 하키’.
넓직한 탁상 양쪽에 서서 凸자처럼 생긴 플라스틱 퍽으로 공을 굴려서 상대편 골대에 넣으면 점수를 따는 간단한 게임이었다.
딱히 해보진 않았지만 대충 어떤 종류의 게임인지는 알고 있었기에 나름 자신이 있었다.
무엇보다 피지컬로 하는 게임인 만큼, 초감각을 지닌 나에게 너무나도 유리한 게임이기도 했고.
“상대는 누구랑 할래?”
모모이가 물었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까딱이며 말했다.
“당연히 너희 둘 다지.”
“……엥?”
“……네?”
“나 혼자서 해볼테니까 둘이서 덤벼봐.”
“뭣-”
내 자만심 넘치는 말에 말문이 턱 막힌 모모이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내게 손가락을 겨누었다.
“이, 이 자식! 그렇다고 우리가 거절할 줄 알았냐-! 감히 우리 자매를 상대로 승부를 걸다니!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우리 자매에게 파티 플레이를 하게 해준걸 후회하게 만들어줄 거에요……!”
격투게임에서의 내 실력을 보았던 탓인지 더 이상 뉴비라고 배려해주는 모양새는 없었다.
오히려 강자를 상대로 협력하는 모양새를 취하는 것이 아무래도 내 실력을 높게 평하는 모양.
내 반대편에 선 쌍둥이가 각자 하키퍽을 붙잡곤 준비 자세를 취하는 것이 보였다.
나도 마찬가지로 건너편에 서며 하키퍽을 쥐었다.
“…그럼 시작한다?”
“덤벼!”
“각오해!”
귀여운 쌍둥이 둘이서 친절하게 위협을 건네주는 모습이다. 나는 훈훈한 마음으로 게임 시작을 위해 동전을 집어넣었다.
덜컹-!
동전이 투입된 직후, 납작한 원형의 공이 중앙에서 떨어져나오더니 순식간에 쌍둥이 쪽으로 스르륵 넘어가기 시작했다.
“하핫! 운이 좋네! 처음부터 서브라니! 간다아앗!”
“언니! 강하게 갈겨!”
탕-!
모모이가 강하게 퍽을 휘두르자, 공이 곡선으로 나아가며 좌측 벽에 부딪혔다. 그리곤 곧장 튕겨나가며 내 골대가 있는 곳으로 돌진해오는 모습.
찰나의 순간에 이루어진 바운스 슛. 아마 1초도 지나지않아 공은 내 배꼽 아래에 있는 골대 속으로 쏙 들어가고 말겠지.
하지만.
‘느려.’
초감각이 켜진 나에게는 그 찰나마저 느린 순간으로 삼을 수 있었다.
찰나의 순간을 쪼갠 순간 속에서 천천히 팔을 이끌었다. 공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아까의 격투 게임과 달리, 이번 게임에서는 초감각의 인도에 따라 순전히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 나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이 게임에서 나는 그 누구와 싸워도, 몇 명과 싸워도 절대로 지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말이다.
이내, 나는 모모이가 했던 것처럼 퍽을 휘둘렀다.
초감각의 인도에 따라, 상승된 신체능력을 이끌어올리며 두 쌍둥이 사이에 위치한 골대를 노린다.
터엉─!!
내가 휘두른 퍽에 공이 닿은 순간, 마치 포탄이라도 쏘아진 듯한 소리와 함께 공이 사라졌다.
흔적도 없이. 마치 원래부터 없었다는 듯이.
“어?”
“에?”
두 쌍둥이는 눈 깜짝할 사이에 공이 하키장에서 사라지자 당황하며 눈을 희둥그레하게 떴다.
그리곤 대체 무엇을 한거냐며 내게 시선을 던질 무렵, 진상을 알려주는 소리가 들려왔다.
띠링-!
[ 1 : 0 ]
“……엣? 무슨?”
“어째서, 1대0……?”
당혹감으로 가득찬 쌍둥이의 목소리.
어째서 점수가 반대로? 우리가 득점한거 아니었어?
그런 표정이 겉으로 드러나는 쌍둥이였다.
하지만 게임은 두 사람에게 상황을 파악할 여유를 주지 않을 작정인지, 2라운드의 시작을 알리는 알림 소리와 함께 중앙 벽면에서 공이 내려보냈다.
모모이와 미도리는 금방 2라운드의 시작을 알아채고 당황하며 자세를 잡아보았지만, 이내 경악하며 절망 어린 표정을 지었다.
공이 굴러갔다.
이번에는 쌍둥이 쪽이 아닌, 내게로.
콰앙─!!
다시금 팔을 휘두르자 마찬가지로 사라지는 공.
그리고 올라가는 점수.
미도리와 모모이의 표정이 이젠 당혹과 의문에서 경악과 절망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띠링-!
[ 2 : 0 ]
“아. 삐끗했다.”
“피지컬 괴물이냐고!!!”
“아니, 방금 소리 뭔데……?”
삐끗했다고?
그럼… 삐끗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건데.
‘오락실이 전부 박살나기라도 하나?’
잘못해서 공에 맞으면 진짜로 죽는거 아냐?
미도리의 표정에 공포가 서리기 시작했다.
재미로 시작한 게임이었는데 어째서인지 그녀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 원인인 히이로를 바라보며 바들바들 눈동자를 떨던 미도리는 손에 쥐여진 퍽을 놓고 싶었다.
하지만, 히이로는 그걸 허락해주지 않았다.
“다시 갈게?”
“오지마! 오지말라고!”
“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미도리는 생각했다.
에어 하키가 피지컬 게임이긴 하지만, 이렇게 무식하게 힘으로 플레이 하는 인간이 어디있냐고!
속으로 절규하며 힘겹게 퍽을 휘적거린 미도리였지만 애석하게도 그녀와 그녀의 언니가 골을 넣는 일은 이후로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 23 : 0 ]
절망스러운 결과에 쌍둥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리곤 잊고 있었던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눈앞의 소녀, 이제보니 학원에서 꽤나 유명했던 인물이었다. 저 무지막지한 힘을 보니 알겠다.
“리틀 더블오…….”
“이러니까 저런 이름이 붙지!”
“피지컬 게임은 다 제외! 다시는 안해!”
“할거면 뇌지컬로 하자! 그래야만 해!”
두 쌍둥이는 결심했다.
히이로를 상대로 피지컬 요소가 있는 게임을 하지는 말자고, 할거면 협동이 가능한 것으로 하자고.
히이로의 괴물과도 같은 피지컬을 약간만 맛보았을 뿐이지만 그것만으로 히이로와 적이 되는게 두렵다는 감정을 느끼게 된 두 사람이었다.
3.
“이야. 재밌었다.”
“그럼…, 다행이고…….”
“으윽……. 이건 내가 알던 뉴비가 아니야…….”
게임을 충분히 즐긴 뒤, 오락실에서 빠져나오자 죽어가는 목소리로 쌍둥이가 중얼거렸다.
나는 두 사람을 옆구리에 낀 채 해맑게 웃었다.
“다음번에는 다른 게임도 해보고 싶네. 다음엔 내가 너희 부실로 찾아가도 돼?”
“으응…. 뭐, 나는 상관없긴 한데…….”
그리 중얼거리며 마찬가지로 옆구리에 껴있는 자신의 동생을 슬쩍 쳐다보는 모모이.
“나도 괜찮아, 언니. 조금… 힘들긴 했지만 오늘 재밌긴 했으니까. 하하….”
미도리까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그제서야 밝게 미소 지은 모모이가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흐흐흥. 좋아! 그러면 나중엔 우리 부실로 찾아와! 그때는 콘솔 게임이랑 PC로 하는 게임도 알려줄게! 그리고 여긴 없지만 유즈도 만날 수 있을거야!”
“좋네. 근데, 유즈라니?”
“우리 게임개발부의 부장이야. 부실 밖으로는 잘 안나와서 부실에 가야만 만날 수 있거든. 그리고… 아마 부실에 가서도 캐비넷 안에만 있을거라 직접 얼굴을 보긴 어려울거야…….”
“그래?”
“응. 유즈는 조금 사람을 어려워하거든.”
이미 알고있는 사실이었지만 나는 대충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얘네들, 옆구리에 껴 있는 상태로 말하니까 되게 귀엽네. 얌전히 있는 것도 그렇고, 뭔가 사람만한 고양이 데리고 다니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며 두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두 사람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람 말을 못 알아들은 고양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듯이 말이다. 미친, 존나 귀여워.
“후. 너희 방금 그거 하지마. 위험해.”
“엥?”
“으응?”
“이 언니 마음이 아파요.”
“뭐라는거야?”
“……?”
“별거 아니야. 그냥 너희들 귀엽다고.”
쌍둥이의 허리에 감긴 팔에 힘을 불어넣으며 말하자, 두 사람의 표정에 당황과 부끄러움이 담긴다.
“무, 무슨…….”
“이, 이제 내려줘…….”
갑자기 쑥쓰러워졌는지 바둥거리는 두 고양이였지만 나는 더욱 강하게 힘을 줘 놓아주지 않았다.
나는 이대로 밀레니엄 캠퍼스를 가로지르며 쌍둥이를 게임개발부 부실이 있는 건물까지 데려다주었다.
그 과정에서 쌍둥이가 부끄러워서 죽을 뻔 했다는건 사소한 해프닝이었다.
…
…
…
“이런 시발.”
그리고 그 날 저녁.
본격적인 리오의 개입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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