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91
1.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그리고 사람을 숨기려면 사람 사이에 숨기라는 말이 있다.
이처럼 누군가가 자신을 찾고자한다면 상대방의 시선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들 사이에서 ‘평범함’을 가장하는 것이었다.
리오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고, 기술이 좋다고 할지라도 수천 수만에 달하는 사람들을 모두 감시하고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익명의 누군가가 전해준 경고를 기억한다.
빅시스터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이 문장 외에도 보내온 여러 관용구를 기억한다.
문장의 내용은 각기 달랐으나 그 의미는 통일되어 있었다.
리오의 눈에 띄지말라는 경고.
나 자신을 감추고, 그 어떤 흔적조차 남기지 말라는 섬뜩한 조언들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아비도스에서 복귀한 직후, 엔지니어부나 베리타스와 만남을 가지지 않은 채 평범한 학생으로서 일상을 영위하고 있었다.
괜히 동료들과의 회동을 리오가 눈치챈다면 나뿐만이 아닌 다른 이들까지 전부 휘말릴까 걱정됐기에.
‘아니, 어쩌면 이미 휘말렸을지도 모르지.’
내가 히어로 활동을 하면서 사용했던 최첨단 기술이 사용된 장비들의 모습과 외적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은밀히 배후에서 나를 돕고 있는 동료가 있다는 정황이 포착된 상황이다.
리오가 어떤 방법으로 나를 밀레니엄 소속이라 추측했는지는 몰라도, 내 이러한 정황을 통해 밀레니엄의 엔지니어부와 베리타스, 그리고 초현상특무부를 의심하는 것은 필연적인 부분일 것이다.
그렇기에 두 동아리에서도 나와의 만남을 최대한 피하려고 했던 것일테고 말이다.
“그래서 이제 무엇을 하실건가요?”
그 결과, 나는 이러한 문제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다.
본래라면 밀레니엄으로 복귀하자마자 히어로 장비의 수리와 강화, 그리고 디펜더스 멤버들과의 새로운 계획을 위한 회의를 진행하려고 했었던 시점이다.
하지만 리오의 개입으로 인해 그러한 계획이 모두 무산된 상황, 나에겐 ‘평범하게’ 행동해야만 한다는 제약이 생겨버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건, 그리고 해야할 것은 무엇이 있을까?
……우연에 가까웠지만. 나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이미 찾아낸 상태였다.
“지금껏 미뤄두었던 일들을 할 시간이지.”
“미뤄뒀던 일들이라면요?”
리오의 감시망은 섬뜩하긴하나 마냥 두려워만 할 요소는 아니었다. 나는 이 순간을 오히려 기회로 삼아 여러 가지 일들을 시도해볼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지금껏 히어로 활동에 몰두하며 차마 손을 뻗을 수 없었던 일들도 존재하였기에.
학생답게. 평범한 일을 해야겠지.
바로-
“공부처럼 말이야.”
“……엑.”
“와카모, 너도 같이 공부하자.”
“저, 저어는… 으음…….”
내 말에 어깨에 기댄 채 헤실헤실 웃던 와카모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그렇게나 공부가 하기 싫은걸까?
하지만 미안하게도 난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공부도 하고, 게임도 하고, 단련도 하고.’
공부. 취미 생활. 친구 만들기 등등.
일반인으로도, 영웅으로도 바쁘게 움직이던 내게 오랜만에 생겨난 여유인 만큼 나는 이 부분을 잘 활용해볼 생각이었다.
거기다, 한 가지 일정도 다가오고 있었으니.
‘다음 스토리 전에 미리 대비해둘건 해놔야지.’
지금 시간은 3월 중순이 끝나갈 무렵.
전생의 지구로 따지자면 이제 막 학기가 시작되고 슬슬 본격적인 수업 진도를 나가고 있을 시점이었다.
하지만 내가 집중한 것은 다른 부분이었다.
“3월 25일. 적어도 24일 전까지는 마무리해야지.”
“……어째서인가요?”
“조만간 선생이 찾아오실 날이니까.”
“선생, 인가요? 그 샬레의?”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3월 25일은 다름아닌 블루 아카이브의 유명 캐릭터인 ‘텐도 아리스’의 생일이었다.
그러니 대충 그 시점이 다음 메인스토리가 시작되는 날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게임개발부와도 안면을 텄고, 조만간 또 만나기로 했으니 스토리 개입은 어렵지 않을거야. 하지만…….’
내가 걱정하는건 이번 스토리의 막바지에 이루어질 한 세력과의 싸움이었다.
그리고 그 세력의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을 어느 권력자에 대한 경계심이 내가 느끼는 부담의 원인이었다.
‘결국, 완벽히 피해낼 수는 없다는걸까.’
메인스토리에 개입한다면 나는 반드시 빅시스터인 리오의 눈에 띄게 될 것이다.
아니, 눈에 띄는 것을 넘어서 아주 의심스럽게 보이겠지. 같은 부원도 아니면서 사건에 개입해 게임개발부를 도와주려고 한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리오의 눈에는 이만큼이나 의심스러운 인물은 없으리라.
그렇기에 고민되는 것이다.
과연 나는 이번 메인스토리에 개입해도 되는가.
특별히 큰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 메인스토리 Vol.2 였기에 외면한다면 큰 문제는 없겠지.
하지만…….
‘나는 이 세계의 모든 이야기를 내가 바라는대로 바꾸고 싶어서 영웅이 되기로 결심했어.’
그런데 내 정체가 발각될 위험에 처했다고 남들을 외면하는 행위가 과연 옳은 선택일까?
그런 의미에서 나와 리오는 반대선상에서 비슷하면서도 다른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단 한가지 선행을 위한 수십가지의 악행.
수십가지의 선행을 위한 단 한가지의 악행.
무엇이 옳은 것일까?
‘…이건, 조금 더 고민해보자.’
모르겠다.
그렇기에 나는 잠시 선택을 유보하기로 했다.
2.
─풀썩!
“…후우, 후우!”
“하악, 학… 흐악… 헤엑…….”
밀레니엄 캠퍼스 외곽의 피트니스 센터.
밀레니엄의 이름으로 운영되는 장소였지만 시설이 너무 구식인지라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유령건물로 변모한 곳이었다.
평소대로라면 목소리는 커녕 인기척도 없었을 그 장소에선 오랜만에 힘찬 숨소리가 울려퍼졌다.
바닥에 드러누운 흑발의 소녀와 무릎에 손을 얹은 채 땀을 닦아내며 심호흡하는 백발의 소녀.
아주 죽을 듯이 숨을 내뱉는 전자와 달리, 후자의 소녀는 오히려 상쾌하다는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후우, 와카모 실력 많이 늘었네.”
“흐욱, 흐읏, 하아…….”
“……괜찮아? 숨소리가 거의 죽을 것처럼 들리는데.”
“후, 후후으후……. 괘, 괘, 괜찮답, 니다아…….”
안마기에 앉기라도 한 것처럼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와카모.
그녀는 애써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자신을 내려다보는 히이로와 시선을 맞추었다.
이제는 동경하는 대상을 넘어 사랑스럽게까지 느껴지는 백발의 미소녀, 어딘가 날카로워 보이면서도 당찬 기세가 느껴지는 청쾌한 분위기의 소유자.
와카모는 자신이 섬기고, 또 애정하는 소녀를 바라보자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가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 또한, 당신이 보내는 애정 중 하나이겠지요…….”
“…으음. 애정이라면 애정이겠지만, 엄청 아플텐데. 미안해. 기술 시험해본다고 대련한다는게 너무 신이 나버렸네.”
“후후후…. 괜찮답니다, 당신…….”
와카모는 그리 말했지만, 몸은 그렇지 않다는 듯 비명을 지르며 부르르 떨고 있었다.
머리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힘에 타격당하길 수십 차례, 와카모가 느낀 것은 이전보다 더욱 성장했다는 감각을 넘어 ‘초월했다는’ 감각이었으니.
고통스럽다. 그리고 아득하다.
와카모는 힘겹게 숨을 고르며 속으로 생각했다.
자신의 주변에서 주먹을 내려다보며 이리저리 고민을 하는 히이로를 바라보며 말이다.
‘아아, 당신의 한계는 도대체 어디인가요?’
방금 있었던 대련을 상기한다.
그러자 절로 전신에 소름이 내달렸다.
가히 두려울 정도로 압도적인 힘이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차이가 난다면 그 두려움은 경외감과 존경심으로 치환된다고 했던가? 와카모가 이 자리에서 느끼는 감정은 바로 그러한 것이었다.
물론, 와카모가 히이로에게 받은 고통을 자신의 애인(愛人)이 보내주는 애정으로 치환하여 받아들이는 기괴한 정신을 갖추고 있었던 영향도 있었지만…….
“…….”
흘끗 주변을 둘러본 와카모는 피식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구식 시설이라곤 해도, 온갖 금속과 석재로 이루어진 시설 이곳저곳에 크레이터를 연상케하는 흔적과 파편이 가득 떨어져있는 모습들.
단순히 격투 기술을 훈련한다는 취지로 시작한 대련인데도, 주변 대련장의 시설이 박살난 상태였으니 전투에 일가견이 있던 와카모마저 감탄을 흘릴 수밖에.
그리고 이는 단순히 와카모와 히이로가 과격하게 싸운 탓이 아니었다.
“쓰읍, 힘 조절이 아직까지 잘 안되네.”
“후후. 바로 조절할 수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이지 않겠어요?”
“뭐, 그건 그런가.”
바로, 히이로가 사용하는 저 힘.
정확히는 ‘힘을 사용하는 방식’이라고 히이로가 정의내린 저 기술의 조절이 잘 안된 탓에 벌어진 일.
단순히 주먹을 뻗는 것으로도 주변 시설이 박살나는 지경에 이를 정도로, 요 몇 시간 사이에 히이로의 힘을 다루는 기술은 실전에서도 사용할 수 있을 수준의 경지까지 오른 것이다.
‘처음에는 분명 준비 시간이 꽤 있었던 걸로 아는데 말이죠.’
이는 실전에서 사용할 수 없을 정도의 결점이다.
기술 하나를 쓰는데 몇 초를 기다려야만 한다?
키보토스에선 총알 수십번이 꽂힐만한 시간일테니.
하지만 히이로는 불과 대여섯시간 대련을 하며 감각을 익히고나니 그 대기시간을 대폭 줄여버렸다.
대체 어떻게 저러한 힘을 쓰는건지.
무슨 깨달음을 얻은 것인지.
어떻게 이렇게나 빨리 성장해나가는지.
히이로를 향한 애정은 둘째치고, 의문투성이인 상황이었으나 와카모가 할 수 있는건 무언가에 몰두하며 진중한 표정으로 고민하는 히이로를 보며 행복하게 미소를 짓는 것 뿐이었다.
여러 의문이 있더라도 와카모의 역할은 그러한 의문을 풀고, 진실에 다가가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은 그저, 히이로의 곁에 있고 싶을 뿐이었으니.
히이로를 바라보며 그녀와 맞닿을 수 있다면.
같은 침대에서 자고, 같은 공간에서 식사를 하고.
…때로는 함께 목욕이라도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 삶이라고, 와카모는 생각했기에.
‘물론, 아직까지 이루지 못한 목표이지만요.’
침대에서 자거나, 식사를 한 적은 있어도.
같은 집에서 생활하면서 함께 목욕을 해본 적은 없던 와카모였다.
그렇기에 와카모는 크게 아쉬워하며 내심 히이로에게 부끄럼쟁이라며 불만을 토로할 뿐.
‘언젠가는 해내고 말거랍니다.’
후후후. 와카모는 밋밋한 트레이닝 복으로도 감춰지지 않는 히이로의 육감적인 몸매를 스윽 훑으며 묵울대를 한 차례 떨었다.
동물의 본능적인 감각일까, 그것도 아니면 사랑의 감정에서 비롯된 충동인 것일까.
…….
모른다. 허나 분명히 와카모의 목표 중 하나인 것은 확실했다.
“…츄릅.”
“음? 와카모 이제 괜찮아?”
“아, 아… 네. 괜찮답니다…….”
“그럼 다시 시작해도 괜찮을까?”
“후후후…. 저야 당신께서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그, 그래.”
히이로는 와카모의 대답에 묘한 긴장감을 느꼈다.
뭐지? 초감각이 왜 갑자기 경고를 하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불안해진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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