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8
“으음….”
눈꺼풀이라는 이름의 커튼이 열리자 환상적인 풍경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이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축복이었다.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얼굴은 마치 여신님 같은…. 여신님 맞구나.
“릴리스.”
눈앞의 여신님의 이름을 읊조린 나는 그게 뭐라고 실실 웃으며 그녀의 도톰한 입술에 입을 맞췄다.
쪽
쪼옥
쪽, 쪽
연달아 입을 맞췄음에도 일어나지 않는 릴리스.
역시나 어제의 나처럼 자는 척을 하는 걸까?
그때 릴리스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의 턱을 잡아 살짝 내려 입을 벌리게 만들고.
“츄르릅….츄웁….츄웁…..츄릅…”
혀를 밀어넣어 릴리스의 입술, 잇몸, 타액까지.
전부 맛보았다.
특히 가끔 혀를 건드릴 때는 릴리스의 몸 전체가 조금씩 움찔거리는 것이 참을 수 없이 귀여웠다.
우리의 첫 데이트를 떠올린 나는 장난기가 샘솟는 것을 느꼈다.
분명 어제의 일을 겪으며 릴리스가 얼마나 참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지만, 이렇게 보복을 해오면 나도 어쩔 수 없었다.
릴리스의 귓가에 입술을 누르며 작게 속삭인다.
“릴리스……누. 나.”
움찔!
간신히 눈을 뜨지는 않았지만 명백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누나.”
“누우~ 나.”
움찔 움찔.
“귀여워요, 누나.”
움찔
“사랑해요, 누나.”
“흐으음…”
그러자 뒤척거림을 연기하며 내 품에서 벗어나려는 릴리스.
어림도 없다는 듯이 따라가며 속삭여준다.
“누나 어제랑 다르게 오늘 너무 귀여운 거 있죠?”
“우리 릴리스 누나 귀여워서 어떡해.”
“누가 데려갈 까봐 무섭다니까요?”
흘끗 보니 릴리스의 귀는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미 한계치에 달했다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결정타를 내기로 했다.
“저 사랑하면 일어나 주세요, 네~?”
“…으윽. 그건 반칙이잖아!”
릴리스가 얼굴을 잔뜩 붉히며 눈을 떴다.
“하지만 지금 시간을 봐요. 아침 먹고 준비할 시간도 빠듯한 걸요? 데이트 가야죠, 데이트.”
“으읏…. 그건 그렇지만…..”
귀엽게 오물거리는 릴리스의 입에 가볍게 버드 키스를 해준 다음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한번에 일어나줘서 고마워요.”
“…못 말려.”
투덜거리듯 말한 릴리스는 나를 마주 끌어안았다.
“아침 뭐 먹고 싶어?”
“추천 메뉴 있어요?”
“아침이니까 가볍게 먹을 거면….. 샌드위치 만들어줄까?”
릴리스가 만들어주는 샌드위치라니.
상상만 해도 군침이 솟아났다.
“좋네요, 샌드위치로 해요.”
“그럼….”
릴리스는 포옹을 풀고 요리를 하러 가려고 했지만….
꼬옥
“…아서?”
“네?”
“…놔줘야 아침을 하러 가는데?”
그건 알고 있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조금만 더 이러고 있으면 안 될까요?”
아침의 노곤함과 릴리스의 포근한 품의 조합은 사람을 나태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안 될 건 없지.”
그렇게 말없이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있던 우리가 몸을 떨어뜨린 것은 내 배에서 난 꼬르륵 소리가 난 이후였다.
—-
릴리스가 식탁에 올려둔 샌드위치….. 음? 어째 익숙하지 않은 재료가 몇 개 보이는데.
하나만 꼽자면 위 아래 빵으로는 도저히 다 덮을 수 없는 크기의 계란 후라이가 눈에 띄었다.
평범한 새의 알이라면 결코 저 크기를 만들 수는 없었다.
“이거 설마….”
“맞아, 자이언트 펭귄의 알이야.”
역시나.
“제가 알아야 할 다른 식재료가 있을까요?”
“없어. 전부 안전한 것들이야. 위험한 애들도 충분히 가공시켜서 안전할 거야.”
…진짜 안전한 거 맞겠지?
어서 먹어보라고 재촉하는 듯한 릴리스의 초롱초롱한 눈동자에 나는 마지못해 샌드위치를 입으로 가져갔다.
샌드위치를 크게 한입을 베어문 나는 마음 속 깊이 다짐했다.
‘다시는 릴리스의 음식을 의심하지 않으리라.’
재료는 솔직히 모르겠다.
턱을 열심히 움직이는 와중에 드문드문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씹히긴 했지만, 뭐든 어떠리.
샌드위치는 환상적인 맛이었다.
이미 샌드위치라는 음식의 한계를 초월한 듯한 풍미.
매일 매일을 이 샌드위치만으로 살아가라고 해도 나는 살아갈 자신이 있었다.
“어때?”
옆에서 릴리스가 물어왔지만, 말해 뭐하나.
“최고예요.”
“후훗, 많이 있으니까 원하는 만큼 먹어.”
“넵!”
아아, 행복해.
요리 잘하는 여자를 만나라던 이야기가 틀린 말이 아니었어.
심지어 릴리스는 요리만 잘하는 게 아니니까.
떠오르는 릴리스의 장점을 나열해보기 시작한다.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엄청난 미모,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준의 압도적인 몸매,
이 세상 모든 요리사들을 따위로 만들어버릴 요리실력,
손가락 까닥거리는 것만으로도 청소와 빨래를 끝내버리는 가사능력,
그리고 압도적인 힘을 가진 외신이라는 정체까지.
‘도대체 부족한 게 뭐지?’
심지어 성격마저 따뜻하고 어른스러운, 하지만 가끔은 너무도 귀여운.
“릴리스.”
“응?”
“저 릴리스랑 사귀게 되서 너무 행복해요.”
정말이지.
릴리스를 만난 것은 내 인생 최대의 행운이다.
그 전의 고통이 이 행복을 위한 대가였다고 생각하면 그까짓거, 가벼워 보였다.
“갑자기 뭐야?”
“그냥….. 릴리스의 다양한 매력이 너무 좋아서요.”
“또 반했어?”
“네, 또 반해버렸어요.”
저번 주보다 이번 주가, 어제보다 오늘이.
계속해서 사랑에 빠져버린다.
더 이상 커질 곳이 없다고 생각한 마음이 계속해서 커져가고 있었다.
이전에 릴리스가 말했던 기분이 뭔지 알 것 같았다.
매 순간마다 커져가는 마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사랑해요.”
몇 번째일지 모르는 고백을 하며 릴리스와 이마를 맞대었다.
“응, 나도 사랑해.”
그날 릴리스의 식사는 좀 더 오랫동안 진행되었다.
—-
그렇게 우리는 또다시 상가로 나오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고 거리를 거닐자 이번에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확실히 느껴졌다.
릴리스를 향하는 동경, 그리고 열정어린 시선들과, 나를 향하는 질투, 의문어린 시선들.
내 옆을 지나가는 커플 한쌍이 눈에 띄었다.
남자의 시선이 릴리스를 향하고 있었지만 상대방 여자는 그런 남자를 제지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여자도 릴리스에게 눈을 떼지 못했기 때문에.
“이거…. 생각보다 좀 부담스러운데요.”
“신경쓰여?”
“조금요?”
“잠시 멈춰봐.”
릴리스의 말대로 가만히 서 있으니 우리 주변의 공기가 아지랑이 처럼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어? 이게 뭐예요?”
“인식저해 마법. 이제 다른 인간들은 우리에게 큰 관심을 가지지 않을 거야.”
주변을 둘러보자 확실히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를 향하지 않고 있었다.
오오…. 이런 획기적인 마법이 있단 말인가…..잠깐.
“…저번에는 왜 안 걸었어요?”
움찔
팔짱을 통해 릴리스의 작은 떨림이 감지되었다.
“릴리스 설마….”
고개를 돌려 시선이 회피하는 릴리스의 귀는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반응을 보니 내 추측이 정설로 굳혀졌다.
설마하니 릴리스가 까먹었을리는 없고…
일부러 걸지 않았다는 게 더 현실적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왜?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우리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내가 임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린 것이다.
신문에 실린 것도 릴리스의 의도였을 터.
이런 행동을 부추기는 원인은 하나밖에 없다.
독점욕.
나는 릴리스가 나에게 독점욕을 느낀다는 사실이…….
“기뻐요.”
“응?”
릴리스가 고개를 홱 돌려서 나를 바라보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는지 잔뜩 놀란 것 같다.
“저를 독점하고 싶다는 욕구. 잘 알고 있어요. 이해할 수 있어요. 저도 같은 마음이니까요.”
방금 전, 인식저해 마법이 걸리기 전.
나는 마음 속 한 구석이 상당히 불편했다.
릴리스에게로 향하는 남성들의 시선이 불편, 아니 불쾌했다.
릴리스의 아름다운 얼굴, 몸매.
전부 나만 보고 싶었다.
릴리스에게로 향하는 그들의 관심이 불쾌했다.
외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그 안을 채운 성격까지.
전부 나만 알고 싶었다.
분명 이기적인 욕구라고도 말할 수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독점욕을 느낀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방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릴리스의 마음이 너무도 기쁜 걸요.”
“아서….”
뭉클해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릴리스.
“그러니까 하는 말인데…. 이 마법. 저희가 데이트 할때는 계속 켜주시면 안 돼요?”
“왜?”
“저만 보고 싶어서요. 릴리스의 매력은 저만 느끼고 싶어서요.”
“푸흐흐….”
내 말에 헤프게 웃은 릴리스는 부드러운 손길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질투하니?”
“네. 릴리스는 제 건데 엿보는 것 같잖아요.”
그 순간 릴리스의 손이 멈칫했다.
“…네 거?”
“네. 저 거예요. 저번 데이트 때 쇄골에 표시도 남겼잖아요.”
그러자 릴리스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진다.
“그거…..”
릴리스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갑자기 교복 상의 단추를 풀었다.
“자, 잠깐만요 릴리스?!”
단추를 위에서 부터 절반 정도까지 내린 릴리스가 상의를 쓱 밀어내었다.
또다시 보게 된 아름다운 그녀의 쇄골.
“도장…..사라졌어….”
그리 말하며 릴리스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강렬히 원한다는 티를 팍팍 내면서.
“…여기서요? 인식저해 마법이 거기까지 커버를-”
“방금 은신마법으로 바꿨어.”
우와…. 철저하시네.
“으음….”
그래도 고민 되었다.
저번에 저 쇄골에 자국을 남길 수 있던 것은 데이트의 마무리 단계였기 때문이다.
데이트에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예방접종을 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데이트의 시작 단계다.
벌써부터 이렇게 수위가 높은 짓을 했다가는 이 뒤가 얼마나 위험해질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안 그래도 어제 그런 일도 겪었는데….
“죄송해요, 릴리스. 지금은 좀…..”
내 거절에 눈에 띄게 실망한 듯한 릴리스지만.
“…대신.”
푹 숙여진 릴리스의 고개를 들어올림과 동시에 그녀의 입술을 내 것으로 덮었다.
쪼옥!
일부러 소리가 크게 나도록 입을 맞춘 나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릴리스에게 말했다.
“입술 도장은 찍어드릴게요.”
릴리스의 얼굴이 더욱 더 붉게 물든다.
그러더니 내게 말하길.
“…부족한데.”
나도 부족하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오늘은 아직 많이 남았어요. 오늘만큼은 마음껏 해드릴 테니까, 일단 갈까요?”
본격적인 데이트는 아직 시작도 못했다.
“…약속이야.”
“그럼요.”
조심스레 새끼손가락을 내미는 릴리스.
그 의도가 너무 빤히 보여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손가락을 걸며 그녀에게 입을 맞춘다.
잠시 뒤, 몸을 떨어뜨린 우리는 서로 얼굴을 붉힌 채 천천히 거리로 나아갔다.
스타트부터 아주 화려한 데이트다.
‘…진짜 립밤이라도 사야하나?’
진지하게 고민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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