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6
이른 아침.
나를 깨운 것은 다름 아닌…
“츄웁…. 잘 잤어?”
릴리스의 모닝키스였다.
“…역시 깨어있었네요.”
어제 아침, 매번 내가 릴리스를 깨우는 것에 의문을 느낀 나는 가끔은 릴리스가 깨워줘도 좋겠다는 말을 했다.
역시나 릴리스는 자는 척을 하고 있던 것이다.
“응? 뭐가?”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얼굴.
거짓말도 아주 선수네 선수야. 그래도…
“이런 것도 좋네요.”
말과 동시에 다시 릴리스에게 입술을 들이밀었지만.
“이 이상은 안 돼.”
릴리스의 손이 내 입을 막아섰다.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상큼한 미소와 함께 돌아오는 대답.
“우리는 가족이니까.”
아, 그러고 보니 역할놀이는 어제까지였다. 지금의 릴리스는 가족으로서의 릴리스.
“…가족일 때도 키스는 곧잘 하지 않았어요?”
“대부분 식사 때 했었지.”
아쉬운 느낌에 팔을 벌려 보인다.
“포옹 정도는 해줄 수 있죠?”
고개를 끄덕인 릴리스가 나를 꼭 안아준다.
따뜻하고 포근한 감촉에 절로 눈이 감기려 했지만.
“아서. 등교해야지?”
“으음…”
“아서.”
결국 마지못해 몸을 때는 내 시야에 무언가가 잡힌다.
다시 이브닝드레스 차림으로 돌아온 릴리스는 쇄골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새하얀 피부에 단 하나. 검붉은 자국이 남아있었다.
달달한 분위기에 취해있던 어제는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지금 보니 상당히… 음.
내 시선을 눈치 챈 릴리스가 요염하게 웃는다.
“왜에? 쪽쪽 빨아댈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부끄럽기라도?”
“아뇨… 부끄럽다기 보다는…”
가까이서 보니 정말 내 입술 모양이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도장이고 또 그 도장을 릴리스한테 찍었다고 생각하니, 정말로 릴리스가 내 소유물이 된 것만 같다는 생각이….
“아, 아침 먹죠!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다급히 릴리스에게서 떨어져 화장실로 직행한다.
‘저리가라 이 음란마귀야~!’
—-
올드 원 튀김으로 아침을 해결한 나는 릴리스와 함께 나갈 준비를 했다.
“오늘부터 4일 간 실기평가가 있어요.”
“실기평가는 정확히 뭘 하는 거야?”
“음… 저도 몰라요.”
“…너 여기 1년 넘게 다니고 있지 않아?”
“네, 실기평가도 이번이 네 번째죠.”
“그런데 모른다고?”
“네.”
나만 멍청이라 모르는 것이 아니다. 같은 시험을 치는 동급생도, 심지어 교수님들도 당일이 되기 전까지는 실기평가의 내용을 알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매 학기마다 총장님이 직접 평가계획을 짜시거든요. 매번 다른 내용이 나와서 졸업생들도 모를 걸요?”
위대한 대마법사께서 직접 만드는 시험이다. 딴지를 걸려면 대마법사라는 직위부터 꺽어야 한다.
비록 앞선 세 실기평가 모두 빛의 속도로 탈락해버리며 3연속 낙제점을 받아온 나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갈까요?”
“잠깐, 뭐 잊은 거 없어?”
내가 어리둥절 바라보고 있자니 릴리스가 한숨을 내쉬며 다가온다. 내 앞머리를 넘긴 릴리스는…
“쪽!”
“…왜 이마에 해요?”
평소에는 입술에다 했으면서.
“지금 입술에다 하면 못 참을 것 같아서.”
…그렇다면야.
나 또한 릴리스의 앞머리를 넘긴다. 그리고 릴리스의 환한 이마에 부드럽게 입을 맞춘다.
우리는 서로를 꼭 끌어안았고 다음 순간.
“냐아~”
내 품에는 까만 고양이가 있었다. 쫑긋쫑긋 귀엽게 움찔거리는 귀를 조물조물거리며 방을 나섰다.
그러자 쏟아지는 수많은 시선들. 그리고…
“어!”
“나왔다!”
문 앞에서 늘어지게 하품을 하던 두 남녀가 내게 달려든다.
“아서!”
“후배님!”
“저희랑!”
“인터뷰!”
“합시다!”
“지금!”
“당장!”
…뭐지? 천생연분이라고 자랑이라도 하는 건가?
“…누구신지…”
“어이쿠!”
“이런!”
“저희가!”
“누군지 모르시다니!”
“저희는!”
“신문부의!”
“취재기자를 맡고 있는!”
“레지나입니다!”
“존슨입니다!”
인터뷰고 뭐고 일단 가장 먼저 궁금한 것부터 물어봐야 겠다.
“혹시 두 분 연인이신가요?”
그러자 동시에 둘의 얼굴이 썩어들어갔다.
“누가 이딴 놈이랑 연인이야!”
“누가 이딴 년이랑 연인이야!”
…남매였군.
그러고 보니 들어본 적이 있었다. 신문부에 쌍둥이 취재기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그다지 닮지 않은 것을 미루어볼 때 이란성인 모양이다…..썩어들어간 표정을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지만.
확실히 호기심이 이는 두 남녀였지만.
“인터뷰 안합니다.”
슬그머니 지나쳐 본관으로 향했다.
“왜!”
“우리가!”
“뭐!”
“어때서!”
“고개만 돌려 쌍둥이들을 바라보며 툭 던지듯 말한다.”
“오늘 실기평가거든요.”
“아.”
“아.”
쌍둥이는 납득했다.
—-
본관 실내 수련장. 이번 실기평가가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실습 수업이 이루어지는 실외 수련장은 언제든 열려 있으며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모든 학생들이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는 개방된 공간이다.
하지만 여기. 실내 수련장은 몇몇 학생회 임원들과 뛰어난 성적으로 실기평가를 통과한 일부 학생들, 그리고 교수진에게만 개방되는 특별한 장소다. 그리고 때때로 실기평가의 시험장이 되기도 한다.
“…좋지 않네요.”
내 말을 들은 릴리스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전 실기평가들은 전부 실외에서 진행됐어요. 하지만 실내 수련장이 열렸단 소리는…”
주변을 조금만 둘러봐도 학생들의 어두운 표정을 볼 수 있었다.
“어렵고 위험한 평가가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죠.”
수업 종이 치는 즉시 수련장의 문이 열렸다.
들어오는 사람을 본 학생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나 또한 고개를 숙이며 외친다.
“안녕하세요 총장님!”
인사를 받으며 준비된 단상에 올라서는 호리호리한 체격의 남자.
“좋은 아침입니다 여러분. 모두 의자에 앉으시죠”
의자? 의자가 어디있다고……어라?
어느새 각 학생들 뒤에 의자가 나타나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의자.
‘…주문도 안 외우고..?’
과연 대단한 사람이었다.
학생들이 의자에 착석하자 총장님은 허공에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 반투명한 이미지가 떠올랐다.
“장소에서도 알아챈 분들이 있을 거라 예상됩니다만, 이번 시험은 여러분이 지금껏 거쳐온 모든 시험들 중에서 가장 위험하고 가장 어려운 시험이 될 것입니다. 이번 시험의 주제는 바로…”
추상적이던 이미지의 형상이 확실한 형태로 바뀌었다. 한 곳으로 모이는 새까만 소용돌이.
그 모습이 어떤 뜻인지 알아챈 학생들이 일제히 탄식을 내놓았다.
“…공간균열입니다.”
탄식을 한 학생들 중에는 나도 섞여 있었다.
‘공간균열? 이걸 시험으로 낸다고? 미친 거 아냐?’
공간균열.
학자들은 이것이 발생하는 원인으로 외신의 공격을 뽑았으나, 그것도 가설일 뿐 아직도 이 기이한 현상의 원인은 그 누구도 모르고 있었다.
균열은 발생했다 하면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사람, 동식물, 건물들, 심지어는 자연환경의 일부까지도.
그 속에서 살아나온 극소수의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거긴 지옥이었다.
라고.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과 재산 피해를 남긴 대처불가의 재해, 그것이 공간균열이었다.
“여기서 공간균열에 대해 모르는 학생은 없을 거라 믿겠습니다. 이번 학기 실기평가 과제는 이 공간균열 안에서 살아남는 것입니다.”
학생들의 얼굴에 먹구름이 진다.
대마법사 앞에서 직접 불만을 제기하는 간큰 사람은 없었으나, 예상하건데 모든 학생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속으로 총장님을 욕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크게 걱정하지는 않으셔도 됩니다. 시험에 사용될 공간균열은 제가 직접 열 것이며 이는 그 균열이 제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는 말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위기에 빠졌다 싶으면 바로 끄집어 낼 테니 모두 걱정마시길.”
공간균열을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는 대마법사의 힘에 놀라면서도…. 학생들의 얼굴은 펴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아, 이 말을 먼저 했어야 했는데… 이번 실기평가는 위험한 만큼 혜택이 주어집니다.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한 학생에게는 제 밑에서 원하는 마법 한 가지를 배우게 해드리겠습니다.”
그 순간. 음울했던 분위기가 반전된다.
먹구름이 꼈던 학생들의 얼굴은 비가 온 뒤 무지개처럼 환하게 피어올랐고, 그 눈빛은 초롱초롱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무려 대마법사의 가르침이었다. 대륙 제일의 현자라 불리는 총장님께 무슨 마법이라도 배우면 그건 자신의 힘을 키우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그 자체로 하나의 커리어가 완성되는 것이다.
학생들의 집중력이 배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에 흐뭇하게 웃은 총장님은 설명을 이어갔다.
“여러분은 시험기간 4일 동안 내내 균열 안을 탐험하게 될 것입니다. 4일이라는 기간동안 무엇을 하던지 여러분의 자유입니다만, 당연히 적극적으로 나서는 학생이 좋은 점수를 받게 되겠지요.”
4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그 기간을 전부 균열 안에서 보내게 될 줄은 몰랐는데…
“기본으로 지급되는 식량은 딱 하루 분량입니다. 남은 3일은 여러분이 현지조달로 끼니를 해결해야 하죠.”
“제가 기본적인 물자는 지급하겠습니다만, 이를 제외한 개인적인 물품을 소지할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생존 서바이벌이었다.
관건은 어떠한 환경으로 떨어지느냐겠지만 총장님은 그에 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
‘직접 경험해보라는 말인가. 혹독하구만.’
만약 릴리스가 없던 일주일 전의 내가 이 시험을 치르게 된다면 유례없는 탈락 신기록을 세우게 될 것이었다.
총장이 다시 손을 흔들자 작은 배낭들이 학생들 앞에 놓였다.
“용량축소마법이 걸린 기본적인 생존배낭입니다. 식량을 포함해 다양한 구호물품이 들어 있으니 잘 간직하시면 좋겠군요.”
그리고 마침내 총장은 단상에서 내려와 학생들 사이에 거리를 벌렸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총장의 눈이 번쩍 뜨이고 그의 오드아이가 드러났다.
동시에 마력이 휘몰아치며 한 곳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강한 인력에 학생의 머리가 휘날리며 여학생들이 비명을 질렀다.
-쩍! 쩌적!
허공에, 정확하게는 공간에 금이 그어졌다.
쩌적 하며 크기를 키워가던 금은 이리저리 이어지며 거미줄처럼 갈라졌고 이내
-콰직!
공간이 갈라지며 생긴 구멍은 책에서 본 무저갱이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그 구멍은 더욱 강한 인력을 만들어내었고, 학생들은 저항할 생각도 못하고 끌려가기 시작했다.
“그럼 좋은 결과가 있기를 빕니다!”
총장의 목소리와 함께 학생들은 날아올라 구멍으로 빨려들어갔다.
릴리스를 꼭 품에 안은 채로 구멍에 들어간 나는 끝없는 어둠의 연속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품 안에 꿈틀거리는 온기를 위안삼아 버텨가던 그때.
‘…어?’
흔들리는 시야에 이상한 것이 잡혔다.
같이 떨어지는 학생들 중 누군가가 품에서 이상한 물건을 꺼내었다.
보기만 해도 불안한 감정을 들게 만드는 그 물건에 나는 소리를 질러 다른 사람에게 알리려 했으나, 균열에서 나오는 끔찍한 소음이 내 목소리를 묻어버렸다.
누군지 모를 학생이 그 물건을 허공에 내지르자.
-쿠우웅
균열이 한층 더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저 물건이 균열에 무슨 영향을 끼친 것이다.
그런 예감이 듦과 동시에 소용돌이 같은 것이 학생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하나둘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지는 학생들 사이에서 나는 정체불명의 물건을 들고 있었던 학생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루이스?!’
경악 하기도 잠시. 소용돌이에 진입하자 이리저리 흔들리는 움직임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방향감각을 상실시키는 격정적인 움직임에 그만 깜빡 정신을 잃어버렸던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응?’
울창한 숲속에 대자로 뻗어있었다.
멍하니 커다란 나뭇잎을 뚫어져라 보고 있던 나는 릴리스를 기억하고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도 릴리스는 내 가슴 위에 늘어져 있었다.
멀미 때문인지 정신을 못 차리는 릴리스를 쓰다듬은 나는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고 이내…
‘…어? 여기는….설마?!’
목에서 우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빠르게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핀 나는 여기가 어떤 곳인지 알아낼 수 있었다.
모를리가 없었다.
잊을 수도 없었다.
내가 처음으로 릴리스를 만난 장소.
나는 릴리스를 통해 들었던 이 곳의 이름을 허망하게 중얼거렸다.
‘…드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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