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6
1.
「빅시스터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누가 보낸건지 알 수 없는 문장.
그러나 나에겐 너무나도 익숙한 문장이었다.
전생의 지구에서도 유명한 문구였던 걸로 기억한다.
정확히는 빅시스터가 아닌 빅브라더로 표기해야 옳은 문구이겠지만 대충 맥락은 이해할 수 있었으니.
초감각의 경종은 울리지 않았으나,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지금의 밀레니엄은 적진 한복판이었다.
그리고 나의 적은 밀레니엄의 최고 권력자였다.
밀레니엄의 학생회장, 빅시스터, ‘츠카츠키 리오’.
키보토스를 대표하는 3대 학원 중 하나인 밀레니엄의 진정한 실권자이자 지도자가 개인의 생활을 감시하고 모든 정보를 독점하여 밀레니엄의 사회를 통제하기 시작하였다.
그 이유는 바로, 불순물인 나- ‘실크’를 찾기 위해서.
무슨 이유로 나를 불순물로 지정했는지.
어째서 이 시기에 행동을 개시했는지.
왜 히마리는 내게 무시하라고 말했는지.
다양한 의문이 머릿속에 자리잡는 순간이었다.
물론, 히마리가 나를 배신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그녀가 날 배신했다면 난 이미 리오에게 붙잡혀 어디 지하에 갇혀있거나, 먼 곳으로 도주하는 중이었겠지.
이유는 여러 가지 떠오르지만, 히마리의 성향을 생각해본다면 어쩌면 진짜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여겼기에 그리 말했을지도 모른다.
‘메시지에서도 그랬지. 심연을 들여보려고 하면 심연도 나를 들여다본다고. 내가 이 상황을 파헤치려고 해선 안된다는 뜻일까?’
아니, 정확히는-
그녀의 시선- 리오의 시선이 닿는 곳에 발을 들이지도 말고, 리오가 내게 주목하지 않도록 하라는 말.
단순히 리오에게서 눈에 띄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내가 직접적으로 개입한다면 필연적으로 리오에게 내 신변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것.
사소한 정보만으로도 내게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리오에게 아예 정보를 제공하는 일 자체를 삼가라는 의미의 조언이다.
[꼬리를 감추어라. 시선을 거두어라.]
[괴물이 당신에게 주목하지 않도록 하라.]
– “정말 무시해도 돼요. 어차피 히이로의 정보는 제가 알아서 차단하고 있기도 하고, 꾸준히 정보 교란을 일으켜서 추적 행위 자체를 봉쇄하고 있어요. 베리타스에게 도움도 받기도 했고요.”
– “걱정 마세요. 물리적인 형태로 히이로에게 위협을 가한다면 당신이 전부 부숴버리면 되는 일이고, 정보적인 형태로 위협을 가한다면… 제가 부숴버리면 되는 일이니까요.”
“……그런가.”
히마리는 말한 것이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역할을 분담하자고.
내가 현장에서 활동을 하지만 히마리는 그러지 못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히마리가 나를 대신해 디지털 세상에서 활동을 할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마찬가지로 그녀를 보조해야겠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선에서. 리오에게 꼬리가 잡히지 않는 영역에서.’
그러니.
현 시점에서 알 수 있는 정보는 무엇인가.
우선 내가 생각해 볼 부분은 거기부터였다.
리오가 나를 왜 쫓고있지?
어째서 리오는 이런 행동을 취하고 있지?
정답을 내릴 수 없었다.
동일인물이 아닌 이상에야 타인을 이해할 수는 없는 법. 내가 리오의 모든 것을 이해하는 날은 분명 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흉내내는 것은 가능할지도 모르지.’
리오의 성격, 행적, 패턴, 습관, 가치관, 신념.
내 머릿속에 담긴 리오의 모든 것들을 취합하여 ‘리오처럼’ 사고를 해보면 된다.
그녀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냉철한 인물.
특정한 계기를 통해 나를 밀레니엄의 ‘불순물’로 지정한 리오는 과연 무슨 판단을 내릴 것인가.
‘훗날, 키보토스에 위기를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아리스를 두고 리오가 내린 판단처럼.’
짐작하건데, 나는 멀지 않은 미래에 리오와 충돌하리라. 바로 저 아리스와 관련된 이유로 말이다.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보자.
나를, 실크를 자신의 장애물로 보게 되었다면?
나로 인하여 그녀가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이러한 사실이 ‘예언’을 통해 점지된 것이라면?
단순히 내 성향을 차치하고도, 리오가 나를 적으로 삼을 이유는 다분했다. 그녀는 합리적이며 이성적이기에 독선적인 것이지, 그저 독단만 벌이는 멍청이가 아니었으니까.
남들 모르게 건설하고 있는 요새도시 ‘에리두’.
리오에게 이용당해 학생다움을 잃은 ‘아스마 토키’.
이후, 예언을 맹신하여 기어이 ‘살인’까지 저지르려는 그녀의 극단적 이성.
그 외에도 수많은 불법적인 행위들을 생각해보면 내가 그녀의 적이 되리라는 것은 명백한 바.
따라서 리오는 나를 적으로 판단하였을 것이다.
…….
간단한 결론이었다.
‘제거한다. 혹은 사전에 확보해 차단한다.’
물론, 단순히 그리 판단내리진 않았을 것이다.
수많은 변수와 고려 요소들이 존재하였으니.
대표적으로, 나의 ‘출신지’와 같은 것을 말이다.
‘하지만 리오는 다른 지역이 아닌, 오직 밀레니엄만을 뒤지고 있어. 이것은 곧 리오가 나를 밀레니엄 학생으로 추정하고 있다는 이야기야.’
그렇다면 전제 조건이 바뀐다.
어떠한 이유로 내가 밀레니엄 학생임을 알았고.
밀레니엄 내부에 내게 우호적인 인물이 다수 존재한다는 사실 또한 파악했다.
그렇다면 리오는 처음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압박한다. 그리고 통제한다.
실크라는 사냥감을 붙잡기 위해 주변에 덫을 깔 듯이, 통제하고 압박하여 나의 숨통을 조인다.
아마 이 순간에도 리오는 많은 후보를 머릿속에 떠올리고 지워내며 탐색을 이어가고 있으리라.
그리고 아주 작은 흔적이라도 나오길 기다리겠지.
베리타스나 엔지니어부와 같은 내 동료가 속한 동아리를 직접적으로 압박하는 수도 있겠지만… 그건 오히려 리오에게 악수(惡手)였으리라.
만약 주변에 변고가 생겼다면 나는 더욱 철저하게 숨어들고 악착같이 리오를 공격했겠지.
리오 또한 그 상황을 고려해 압박만 가했을 것이다.
‘흐음…….’
나를 찾아서 무얼 하려는지는 알 수 없으나, 배후에서 은밀히 나를 추적한다는 것은 히마리의 말대로 떳떳한 이유는 아니라는 것.
그럼에도 그녀가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그녀가 자신의 행적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으면 하는 이유의 반증이다.
‘어째서일까?’
어째서 리오는 나를 은밀하게 붙잡고 싶어할까?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나로썬 이해할 수 없는 천재 중 한명인 리오의 판단이다.
그녀가 어떤 이유로 결론을 지었는가는 내 두뇌로 따라가기란 벅찬 것이었다.
다만, 한 가지는 알았다.
‘이 또한 리오가 저지르는 독단이구나.’
어제, 세미나의 서기인 노아가 전달한 경고.
그리고 지금 이해되지 않는 리오의 행동 방식.
또한, 위기감 없어보이는 동료들의 태도까지.
만일, 세미나 전체가 움직였다면 동료들의 반응이 지금과 같았을까? 나는 아니라고 보았다.
그러니 결론지을 수 있는건 지금의 행동이 리오 개인의 일탈이자, 독단이라는 것.
그렇기에 익명의 누군가가 내게 경고를 전달할 수 있었으며 나에게 괜한 행동을 하지 말라한 것.
“허. 그런거였나.”
아무래도 내가 모르는 사이, 밀레니엄에선 한바탕 전쟁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그것도, 현실이 아닌 장소에서 말이다.
2.
현실이 아닌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물밑에서 이루어지는 내가 모르는 혈투.
나를 지키기위한 동료들의 노력.
지금껏 나는 그것들을 실감하지 못했지만 이 순간에 이르러 새삼 실감했다.
어쩌면 지금도, 내가 낄 수 없는 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중이리라.
그래서 아까 베리타스 애들이 바쁘다고 한건가.
여기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나는 고민에 잠겼다.
‘그럼 난 뭘해야하지.’
지금의 사실을 히마리에게 전달한다?
……이미 알고 있을거 같은데? 초천재 병약 미소녀 해커인 아케보시 히마리가 이 사실을 모른다고?
남들보다 특출나게 똑똑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나도 추론해낸 내용인데, 과연 리오와 함께 보낸 시간이 많은 히마리가 그걸 모를까?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언제나 그랬으니.
혹시 모르니까 전화라도 해볼까.
아니. 어디서 감시를 당하고 있을지 모르니 그만두자.
나중에 부실로 가서 말해줘도 되겠지.
“……뭐하지, 그럼.”
동료를 만날 수도 없다. 뭔가 눈에 띄는 행동을 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그럼 내겐 뭐가 남았죠?
‘시간…. 시간이 남았습니다…….’
미친 듯이 넉넉한 시간이요.
나는 이 시간을 어떻게 써야만 할까.
어떻게 시간을 써야 남들에게 소문이… 나면 안되고, 나 혼자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까.
그리 고민하던 순간이었다.
익숙한, 아주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오락실 가자, 오락실!”
“언니… 오늘 숙제 있잖아. 공부 안해?”
“에잇! 그런건 나중에 몰아서 하면 그만이라고! 자, 자, 렛츠고~~!”
“하아…… 이러다 나중에 보여달라고나 하지마.”
“알겠다니까~”
내 눈앞을 지나가는 두 명의 소녀.
제대로 보지 않았다면 동일인물 두 명이 지나갔다고 생각할 정도로 비슷한 모습을 한, 쌍둥이 소녀였다.
어깨에 스칠 듯한 금발머리. 똑 닮은 얼굴. 고등학생이라곤 보기 힘든 작은 체구. 사이즈가 맞지 않는 듯한 겉옷 차림 등, 두 사람을 쌍둥이라 판단할 수 있는 요소가 가득했지만.
그러면서도 두 사람을 구분짓는 차이가 있었으니.
“응? 뭐지?”
“…으응?”
우선 들려오는 목소리 음정의 고저부터, 겉으로 보이는 성격적인 부분, 더 나아가 쌍둥이인 두 사람의 대표 컬러가 상반되어 있다는 점까지.
익숙했다.
내게 있어서 너무나도 익숙한 소녀들이었다.
그런 감상을 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순간,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거리를 지나치던 두 소녀가 내게로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분홍색과 연두색. 외형은 같으나, 명확한 차이가 있는 두 색깔을 휘감은 쌍둥이가 나를 올려다본다.
분홍빛 눈동자와 분홍빛 헤일로, 분홍빛 고양이귀 헤드셋, 분홍빛 총을 들쳐맨 외향적인 소녀.
연두빗 눈동자와 연두빛 헤일로, 연두빛 고양이귀 헤드셋, 연두빛 총을 들쳐맨 내성적인 소녀.
그녀들의 눈빛에 의문이 점차 깃들던 그 순간.
“아?”
번쩍-!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번개가 몰아치는 듯했다.
‘리오의 시선을 피하고, 추적받지 않을만한 장소. 대외적인 활동이 명백하고, 목적과 행적이 간단명료하여 다른 이들이 크게 의심하지 않을만한 곳…….’
게임개발부.
이후 메인스토리에도 관여하게 되는 동아리이자, 그 이후의 스토리에서도 크게 기여하는 인물들이 있는 장소였다. 당연히 착한 친구들만 모여있기도 하고.
언젠가는 접촉할 생각이었으나 딱히 계획을 해놓지는 않았던 곳이었다.
이번에 아비도스의 일을 끝냈으니 조금 쉬었다가 접촉해볼까- 하고 생각만 했었는데…….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보니, 게임개발부만큼 대외적으로 의심받지 않을 장소가 따로 있던가?
‘없다.’
나는 곧장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지금부터 내가 해야할 일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리오의 행동에 신경쓰지 말고, 리오가 나를 찾아내기 힘들도록 행동하라.
익명의 누군가와 히마리, 그리고 노아가 남긴 계명을 성실하게 수행할 시간이다.
간단히 말해서 이런 뜻이다.
나는 의문스런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게임개발부 쌍둥이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안녕, 얘들아. 너희가 혹시 게임개발부 애들이니?”
“네. 맞아요. 언니는 누구세요?”
“마, 맞아요. 근데 무슨 일로……?”
이렇게 된거 게임개발부랑 존나 놀아야지.
리오? 그게 뭔데. 알빠노?
응~ 신경쓰지 말라고 했으니까 놀거야~
“다른건 아니고, 게임에 대해 묻고 싶은게 있어서.”
“……!”
“……!”
게임에 대한 주제를 꺼내니 게임개발부답게 눈을 빛내는 쌍둥이 소녀들이 보였다.
원작에서도 그랬지만, 직접 보니 더 순수하다는 느낌이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괜찮으면 같이 오락실 가도 될까?”
내 부탁에 두 쌍둥이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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