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2
1.
“그러고보니, 너는 왜 총을 안쓰는거야?”
문득, 새로운 장비에 대한 상담을 함께하던 히비키가 내게 물었다.
우타하가 구상에 몰두한 틈을 타 궁금하던 부분을 물어보려는 심상인 듯 했다.
‘음.’
어째서 총이 아닌, 주먹으로만 싸우는가.
누구나 알다시피 키보토스의 기본 무장은 ‘총’이다. 게임에서도 주먹을 사용하는 모습은 거의 포착되지 않을 정도로 총은 보편적인 무기로써 키보토스의 상식과 같았다.
그렇기에 내가 더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띈 것도 있었으리라.
총도 사용하지 않으면서, 오직 주먹과 기술만으로 수많은 적들을 쓰러뜨리면서 질서를 유지하니까.
하지만 이 부분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난 그것을 히비키에게 말해주었다.
“시민을 지킬 수 없으니까요.”
“……왜?”
히비키의 ‘왜’는 아마도 총과 주먹의 차이점을 명확히 이해하고 있기에 내릴 수 있는 의문이겠지.
상식적으로 거리가 짧은 주먹보다는 총이 더 강하고, 확실하게 적들을 공격하고 쓰러뜨릴 수 있으니까.
하지만.
총은 나에게 있어서 단순히 ‘손을 빼앗는’ 무기에 불과한 것이었다.
“저는 언제나 시민의 곁에 있어야하는 입장이니까요. 갑자기 시민 쪽으로 몸을 움직여야 하는 상황, 시민에게 손을 뻗어야 하는 상황에서 총을 잡고 있으면 안되잖아요?”
“오…. 확실히 일리가 있어….”
“그리고 또, 주먹은 총과는 달리 적들의 몸을 확실하게 무너뜨릴 수 있는 수단이죠. 적들이 시민에게 총구를 겨누었을 때, 손으로 붙잡아서 총구를 비틀거나 총을 부술 수 있죠. 더 나아가서 총알의 방향을 읽고 손을 뻗어서 막아낼 수도 있으니까요.”
“확실히.너는 다 이유가 있었구나.”
내 히어로 활동에 관심이 많은 히비키인 만큼 내 행동 양식을 듣자 눈을 반짝거리는 모습.
심지어 꼬리마저 흔들며 나를 존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건 좀 많이 귀엽긴 하네.
그에 나는 장난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물론, 그게 더 멋있어서라는 이유도 있지만요.”
“응. 확실히 멋지기는 해….”
내 장난을 받아주며 고개를 끄덕이는 히비키.
사실 그것 외에도 이유는 다양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저것들이었다.
“그래서 우타하 선배랑 히비키한테 부탁한거에요.”
“이번에 의뢰한 무기?”
“네. 저는 언제나 주먹을 쓰니까, 그 부분을 더욱 강화해야만 하죠. …이번에 싸우게 될 적은, 보통 상대가 아닐테니까요. 그러니 부탁할게요.”
“응. 걱정하지 마. 강적을 쓰러뜨릴 수 있는 물건으로 만들어줄게.”
내 고민하는 표정을 보았기 때문일까, 갑자기 내 머리를 쓰담쓰담 쓸더니 안심하라며 엄지를 치켜드는 히비키.
그에 웃음을 터뜨린 나는 작게 미소지으며 감사의 의미로 히비키의 입가에 과자를 넣어주었다.
“이기고 올게요. 고마워요.”
“응. 꼭 이겨.”
히비키의 응원도 받았겠다, 아무래도 이번 싸움은 절대로 지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
“그곳이 바로, 와카모의 현재 아지트에요.”
부실에 도착하고 회의를 시작하자마자 히마리가 허공에 띄어올린 홀로그램. 그곳에는 D.U 외곽의 어느 지점을 화살표로 표시하고 있었다.
와카모의 아지트, 라니.
표시된 장소에서 와카모가 당분간 며칠 정도 머무르며 계획을 수립하고, 전처럼 테러를 감핼할 것이라는게 히마리의 설명이었다.
“…확실한 건가요?”
“후훗, 당연하죠. 무려 저희 에이미가 직접 뛰어서 확인까지 마친 사안인걸요? 그쵸, 에이미?”
“응. 확실해. 먼 곳에서 망원경으로 직접 있는걸 확인까지 했어.”
두 사람의 확실한 대답.
하지만 나는 미묘한 반응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그녀를 역추적했을 때는 도망치던 와카모가, 이렇게 갑자기 자신의 아지트를 노출시킨다고?
이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히마리는 씨익 미소를 짓더니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후후. 지금 함정이라고 생각하셨죠, 나나시 후배님.”
“……네. 아무래도 수상하지 않습니까?”
내가 그리 말하자, 어깨를 으쓱이며 히마리가 말했다.
“그럼요. 당연히 함정이죠.”
“네?”
당연히 함정이라고?
히마리의 확신에 찬 말투에 나는 저도 모르게 에이미를 바라보았다. 에이미 네가 확인했다며.
“난 확인만 했다고 한 것 뿐인데.”
“…….”
“와카모는 저희가 그녀를 역추적하고 있는걸 알고 있어요. 그런데 저렇게 대놓고 아지트를 노출시켰죠. 이 행동이 의미하는 바는 한가지 뿐이에요.”
와카모는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 불까지 지른 애다.
그런 녀석이 갑자기 추적을 회피하지 않고 대놓고 자리에서 가만히 있는다?
즉-,
“나를, 기다리고 있다?”
“네. 바로 그거에요. 그냥 단순히 추적 회피를 포기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와카모는 그럴 인물이 아니죠.”
필시 무언가의 목적이 있을 터.
히마리는 그렇게 이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아니, 그러면 처음부터 그렇게 말씀을 해주시지.”
“후훗. 저번의 복수랍니다, 나나시. 감히 저의 편안한 숙면을 깨우시다니, 그것은 밀레니엄 최고의 천재 병약 미소녀 해커에게 있어 큰 중죄라고요?”
“그건…, 제가 잘못했네요. 죄송해요.”
“대인배이자 최고의 미소녀 해커인 저니까 사과를 받아들이도록 할게요. 다음부터는 그러시면 안돼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헤헤 웃으며 기뻐하는 히마리.
그때 히마리의 표정을 지켜보던 에이미가 갑작스레 말을 툭 던졌다.
“히마리 선배. 그래놓고 전에 좋아했으면서.”
“조, 조용히 하세요, 에이미! 제가 언제 실실 웃으면서 기뻐했다는 말인가요…! 저는 단언코, 천재 해커인 저의 명예를 걸고 그런 적이 없어요!”
“난 그렇게까지 말 안했는데.”
“조용!”
“……그냥 회의나 이어서 합시다, 저희.”
괜히 민망해지기만 한다.
그러자 크흠, 하며 헛기침을 한 히마리가 다시금 집중하라는 듯 휠체어를 툭툭 건드렸다.
이어서, 히마리 선배는 와카모의 진짜 목적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제가 분석한 바로는 코사카 와카모는 극도의 ‘인간불신’ 증세를 겪고 있어요. 과거 행적을 조사하던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큰 배신을 당한 경험이 있던거 같더군요. 그 시기를 기점으로 불량학생이 되어 온갖 범죄와 재액을 불러일으켰고요.”
“…….”
“이 부분부터는 단순히 저의 추측, 그리고 프로파일링에 불과해요. 저는 와카모가 나나시 후배님의 ‘영웅 활동’에 큰 반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근본적으로 인간을 신뢰할 수 없는 그녀이기에, 그저 선의로만 사람을 구하는 당신을 부정하게 된거죠.”
와카모의 성격, 그리고 인간불신은 게임에서도 드러난 부분이었다. 특히나 선생과의 인연 스토리에서.
누군가에 당한 배신, 그로 인한 타락과 변화.
이는 코사카 와카모를 ‘재액의 여우’로 변하게 만들었고 더 나아가 그녀를 끝없는 파괴충동과 투쟁본능 속에서 살아가게 만들었으리라.
‘그녀의 스킬 이름에서 그것이 드러났었지.’
하지만, 어째서 그런 와카모의 성질이 나의 히어로 활동에 대한 반감과 시험으로 나타났는가.
“어쩌면, 직감적으로 느꼈을지도 모르죠. 후배님이 이상할 정도로 감이 뛰어난 것처럼.”
“……직감이요?”
“그녀의 행동은 후배님의 입장에선 빌런, 즉 악당이나 다름 없으니까요. 그래서 와카모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적수인 후배님을 알아보았고, 후배님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깊은 흥미와 반감을 느꼈다… 라는 가설이에요.”
확실히, 일리있는 말이기는 했다.
내가 생각해도 내 성향상 언젠가는 와카모와 직접적으로 격돌하게 될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으니.
그것이, 특정한 계기로 살짝 빨라졌을 뿐.
“그럼, 와카모의 진짜 목적은…….”
“후배님의 한계, 영웅의 밑낯을 밝히는 것. 모두의 희망이자 선의 상징이었던 당신을 추락시키는 것. 그것이 와카모의 목적이라고 생각해요.”
“…하.”
참 웃기면서 애석한 일이다.
사람의 악의에 의해 타락했기에 선의를 신뢰할 수 없게 된 소녀.
사람의 악의를 용서할 수 없었기에 선의를 베풀기로 한 나 자신.
우리는 어쩌면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존재였을까.
‘모른다. 누가 알 수 있었을까.’
나와 와카모의 관계가 이렇게까지 극단으로 치닫게 될 줄은. 그 선생이라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할 일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갈건가요, 후배님?”
“가야죠.”
내 대답에 후후, 웃더니 내 손을 붙잡는 히마리.
갑자기 내 손을 만지작거리더니 당찬 미소를 지으며 그녀는 손등을 툭 건드렸다.
“그럴 줄 알았답니다. 그럼 다녀오세요.”
“잘 갔다와.”
“네. 다녀오겠습니다.”
얼굴에 익숙한 여우 가면을 쓰고 미리 준비해두었던 ‘무기’까지 장착한 나는 부실을 나섰다.
이제, 여우와의 싸움을 마무리할 시간이었다.
다만 한 가지.
이 사건을 단순히 끝낼 생각은 없었기에.
“여보세요?”
나는 부실 밖에서 누군가에게 통화를 걸었다.
3.
“오셨군요. 도시의 영웅, 실크.”
“……와카모.”
히마리가 알려주었던 장소로 도착하자 그곳에는 내가 기억하고 있던 게임 속 모습을 한 와카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더 화려한 여우 가면.
저 가면 아래에서 와카모는 과연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걸까.
경멸? 혹은 증오나 분노?
나로썬 알 수 없는 일이다.
그저 이 순간 놓여진 상황만을 이해할 뿐.
내가 체념의 기색으로 주먹을 쥐자, 그것을 지켜보던 와카모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내게 물어왔다.
“영웅답게, 저에게 무언가 말을 꺼내시려는 것 아니었나요? 저의 윤리적 결점을 들먹이면서.”
“이미 서로 다 알고 있는 사이에 그럴 필요는 없지.”
“하! 당신이, 저의 무엇을 아신다고?”
와카모는 짜증난다는 듯, 살짝 격양된 목소리로 나에게 물어보았다.
내가 와카모에 대해 무엇을 아는가.
정말로 많은 것을 알고 있지.
좋아하는 물건, 그녀의 과거와 미래…,
그리고, 그녀가 사랑에 빠질 사람까지도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나의 적이라는 사실은 알지. 이 자리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남아있나?”
지금은 필요 없는 이야기였다.
“아하하! 그렇죠, 그런게 남아있을 리가요!”
콰앙-!
와카모는 지면을 강하게 짓밟으며 마치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한 짐승마냥 자세를 취했다.
그리곤, 나를 향해 흉포한 기세를 쏘아보내기 시작했다. 살이 떨려오는 살기에 나는 가면 뒤에서 표정을 굳혔다.
“끝까지 당신은 자신을 영웅으로 포장하려고 하는군요. 고결하고, 선하며, 모두의 희망으로.”
“…….”
“참, 멋있으신 분이네요? 영웅이라….”
고혹적이게 높아지던 와카모의 목소리.
하지만 이내, 그녀는 한없이 차갑고 경멸이 담긴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그런 인간은 세상에 없답니다.”
그러니 눈앞에 있는 당신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재앙이리라.
그것은 인간에게 배신당한 소녀가 흘리는 눈물이요,
동시에 결국 망가지고 만 학생의 비탄이었다.
“그런가.”
그것이, 네가 선생에게 반한 이유였구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남성’의 등장.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학생을 향한 무한한 애정.
그리고 그녀 자신의 과거를 씻겨낼 정도로 고결한 선생의 신념까지.
와카모에게 선생은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을 배신했던 인간이 아닌, 새로운 구원.
와카모에게 선생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이해했다.
그녀가 어째서 선생에게 집착했는지, 왜 그를 사랑했는지를 깊이 이해했다.
하지만.
“그러니, 용서는 그에게 빌어라.”
그것이 내가 그녀를 용서할 이유는 되지 않았다.
나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자가 아닌, 벌하는 자.
영웅. 그것이 나의 역할이었으니.
“이야기는, 모든게 끝난 이후에 듣겠다.”
그것이 내가 내린 결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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