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1
1.
내가 히어로가 되기로 한 이유는 무엇일까.
솔직히 말해서, 그리 특별한 계기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하고 싶은걸 하겠다는, 빙의한 김에 기존의 이야기를 바꿔보겠다는 빈약한 이유.
그것이 전부였으니까.
하지만.
히어로 활동을 하다보면 때때로 드는 생각이 있다.
예를 들면, 내가 시민들을 구해내고 그들에게서 감사인사를 받을 때라거나, 혼란 속에서 내가 나타난 것만으로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를 때라거나.
그럴 때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의미 모를 두근거림이 번져나가며 새겨지는 성취감과 고양감.
카이저 PMC를 쓰러뜨리고, 시민들의 환호를 처음 받았을 그 순간처럼. 나라는 존재가 단순히 학생이 아닌, ‘영웅’으로 거듭나는 순간이 찾아오는 순간마다 나 자신의 선택의 보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 일을 시작하길 잘했다- 라면서.
그렇기에 나는 이후에 내게 던져진 물음에 의외로 쉽게 답을 내릴 수 있었다.
“당신은, 무슨 목적을 가지고 있으신거죠?”
너는 어째서 히어로 활동을 하는가.
왜 너는 이러한 시기에 나타나 오직 선의만을 위해 도시를 뛰어다니는가.
정말 아무런 대가도 없이, 아무런 보상도 없이, 그저 책임과 사명만을 위해 활동하는게 맞는가.
“저는 믿을 수 없답니다. 당신이란 존재가, 오직 선의와 책임만을 위해 행동한다는 것을. 그러니- 제가 직접 증명하도록 하겠사와요.”
그녀- 재액(災厄)의 여우라 불리우는 소녀.
‘코사카 와카모’는 나를 노려보며 크게 소리쳤다.
“당신이 고결한 영웅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그녀가 나에게 던진 질문.
동시에, 나 자신이 직접 되물은 질문.
난 영웅인가, 영웅을 모방하는 자인가?
그것에 대한 답은 이미 한참 전에 내려졌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이 세상에 떨어진 이유일지도 몰랐기에.
하지만.
이 이야기는 아주 조금 뒤에 시작하도록 하자.
우선 살펴볼 이야기가 남아있었으니.
2.
모든 일의 시작은 한 군수창고에서 시작됐다.
콰아아앙─!!
늦은 밤, 모두가 잠들었을 키보토스의 어둠 속에서 강력한 폭발 소리가 도시를 뒤흔들었다.
치솟아오르는 불길. 난무하는 비명 소리.
그리고 연이어 울려퍼지는 폭음.
내가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보게 된 것은 그야말로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망할.”
상황은 이러했다.
카이저 코퍼레이션의 계열사가 소유한 군수창고에서 발생한 갑작스러운 폭발과 화재. 내부에는 직원 네다섯명이 아직 바깥으로 대피하지 못한 상황.
곧바로 발키리와 소방부대가 도착해 화재를 진압하기 시작했으나 불길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건물 전체를 뒤덮은 맹렬한 불길은 다가오는 모든 존재를 불태워버릴 듯이 매섭게 타오르고 있었다.
진입하려고 해도 창고 내부에 어떤 물건들이 존재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섣불리 진입했다간 오히려 큰 화를 입게 될 것이 분명한 상황.
하지만 그 순간.
“살려주세요! 여기 사람 있어요!”
창고 내부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
이에 소방대원들의 고뇌는 더욱 깊어만 갔다.
“당장 진입해야 합니다! 이대로면……!”
“섣부른 판단 마! 멋대로 진입했다가는 저 시민은 물론이고 우리까지 죽을거라고!”
“그럼 이대로 가만히 있습니까?! 어떤 방법이라도 찾아서 저 사람을 구해야만-”
소방대원 간의 설전이 오갔다.
그들의 의무는 화재를 진압하고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 허나, 그 ‘구한다’의 영역엔 자신의 목숨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구조’에 있어서 그 누구보다 냉철하고 차갑게 판단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불같은 분노를 느끼며 자신들의 무력함을 실감했다.
카이저 측에 정보 공유를 요청해도 기밀사항이라는 말만 전할 뿐, 제대로 된 정보는 물론이고 내부 구조마저 파악하지 못한 상황.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 이 상황 속에서 자신들은 ‘소방관’이라는 역할을 다할 수 있는가.
그리 고뇌하던 순간이었다.
“제가 가겠습니다.”
익숙하면서, 어딘가 낯설게 느껴지는 미성이 그들의 등 뒤에서 울려퍼졌다.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고 있던 소방학교 대원들은 하나 둘 고개를 들어올렸고,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이내 가면을 쓴 소녀는 아무런 말 없이 건물로 다가가 거미줄을 발사했다.
피슉-!
그리고.
소녀는 하늘을 날아 순식간에 시민이 있는 위치까지 도달했다. 창문에서 멀리 떨어지라는 말과 이어서 창문을 깨부수고 내부로 진입해 시민을 구해오기까지, 아주 짧은 순간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에 소방학교 학생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으며 곧바로 다음 시민을 구하기 위해 진입하는 영웅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실크?”
“이 늦은 시간에 이곳까지…….”
그리고 이내, 실크의 모습에 감명을 받은 학생들은 다시금 정신을 붙잡곤 관창을 강하게 붙들었다.
“다들 관창 잡아라! 재빨리 불을 끈다!”
“네!”
실크라면- 믿을 수 있다.
그녀라면 시민들을 구해올 것이라는 믿음을 품으며.
키보토스의 또 다른 영웅인 그들은 오직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3.
[여기까지가 현재 밝혀진 코사카 와카모의 행적을 조사한 결과에요.]
며칠 전, 나는 히마리 선배로부터 와카모의 행적에 대한 조사를 부탁했다.
그리고 그 결과, 나는 지금까지 발생한 모든 교정국 탈옥범들의 테러가 와카모의 사주임을 알아냈다.
더 나아가, 그녀가 오직 ‘내가 활동하는 구역’에만 저런 행위를 하고 있다는 점.
항상 시민들을 휘말리게 하고, 내가 그들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상황을 만들며, 그 끝에서 고통과 상처가 뒤따르게 만든다는 점.
[역시나, 그녀가 맞았네요. 후훗, 자 후배님? 저의 천재적인 지성이 느껴지시나요? 밀레니엄 최고의 천재 병약 미소녀 해커인 저의 놀라운 지성을-]
“…….”
[잠깐, 듣고 있나요? 네? 저기요?]
나는 히마리의 자뻑을 무시하며 생각을 이어갔다.
조사한 내용과 특이점들을 통해 그녀의 목적이 나- ‘실크’라는 사실은 알아챌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아있었다.
왜? 그녀는 어째서 나를 노리는가.
어째서, 오직 나를 괴롭히는 것이 목적이라는 듯이 행동하며 지금까지 정면에 나서지 않는가.
“……아직은 때가 아니라 그건가?”
[나나시 후배님? 표, 표정이 조금 무서운데요…?]
하.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동시에 분노마저 치솟았다.
저절로 이빨이 빠득 갈리고, 미간이 찌푸려질 정도로.
‘누굴 장난감으로 아나.’
[헉.]
그래. 솔직히 말해서 나를 노리고 공격을 하는 것은 상관이 없다. 히어로 활동을 하는 이상, 적이 늘어나는 것은 막을 수 없다는걸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시민을 도구로 쓰며, 도시를 테러하고 다녀?”
이건 용서하지 못한다.
그녀가 블루 아카이브의 학생이든 뭐든, 내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그딴 짓거리를 하는 녀석은 내버려둘 수 없었다. 이건 내 신념이고, 사명이었다.
언젠가는 와카모와 싸우게 될 것임을 알았지만,
아무래도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준비를 해야만 할 것 같았다.
“히마리 선배.”
[네, 네…?! 무, 무슨 일이죠, 후배님?]
“한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마, 말씀하셔요…….]
뭐지. 히마리가 왜 갑자기 찌질해졌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히마리에게 부탁하려는 것, 그것은 간단했다.
“베리타스에게 도움을 부탁할 수 있을까요.”
[베리타스라니, 그 아이들은 어째서……?]
“다소 무모한 도전일지도 모릅니다만, 이대로 와카모에게 휘둘리고 싶지는 않아서요.”
나는 히마리에게 부탁한 바는 다음과 같았다.
해킹을 통해 와카모에 대한 ‘모든’ 정보를 조사해 제공해달라는 것.
그것을 토대로 나는 와카모를 ‘역으로’ 추적할 계획이라는 것까지.
이는 일전에 히마리에게 입부 제안을 받았을 순간에 대화 나눴던 ‘히어로 활동의 도움 제공’과도 직결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히마리는 승낙했으나, 문제는 그녀가 아닌 내가 부탁한 또 다른 조력자들이었다.
[으음…. 그 아이들이 과연 도와줄지 모르겠네요.]
“어려울까요?”
[하아, 좋답니다. 귀여운 후배의 부탁이니 이 초천재 미소녀 선배가 발 벗고 나서서 도와드리죠.]
“고마워요, 히마리 선배.”
[흠흠. 고마우면 한번 ‘언니’라고 불러주셔도…….]
히마리의 뒷말은 무시했다.
그리고 결과는 예상대로 승낙이었다.
…
…
…
그렇게 와카모를 역으로 추적하다 터진 사고가 바로 이번 군수창고 화재 사건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나는 건물 내부에서 시민들을 구한 뒤, 곧바로 소박학교 대원들과 함께 화재를 진압하는데 성공했다. 모두의 노력 덕에 사상자가 한명도 생겨나지 않은데다 소방학교와의 신뢰도 쌓았다.
하지만 나는 이 상황 속에서 깊은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이번 화재의 범인인, 와카모를 향한.
‘네가 바라는게 뭐든, 어디 한번 해보자고.’
모두가 잠든 새벽, 생텀타워가 정지되어 네온사인이 희미하게 빛나는 도심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내, 차오르는 분노에 주먹을 꽉 쥐곤 얼굴의 가면을 매만지며 선언했다.
“아무래도 우리는 부딪힐 운명인가 보네.”
“기다려라, 코사카 와카모.”
그곳에서 영웅은 빌런의 처단을 결심했다.
[!– Slider main contain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