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8
“어서와, 아서.”
나는 그대로 릴리스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제가 어떻게 된 거예요?”
“너는…”
말 끝을 흐리는 릴리스.
분명 내 충격을 걱정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전부 얘기해주세요.”
나는 현재의 상황을 제대로 알고 싶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릴리스는 이내.
“한 인간이 너를 찔렀어.”
릴리스는 찔린 부위를 말하지 않았지만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내가 공허함을 느꼈던 그 부위.
“…제 심장을요?”
릴리스는 말만 들어도 끔찍한지 몸을 움찔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완전히 관통당했었어.”
“그런데 제가 어떻게 살아있는 거죠?”
사실 이 어둠은 사후세계였다거나?
영원히 이 곳을 떠돌게 되는-
“회복마법으로 살렸어.”
휴, 다행이다.
죽진 않은 모양이네.
“그렇다면 여긴 어디죠?”
“꿈 속이야. 현실에 너는 의식이 없는 상태고.”
“…저를 만나기 위해 꿈 속까지 들어온 거예요?”
“응, 그리고 너를 내 꿈으로 들여왔어.”
릴리스의 꿈?
어쩐지. 사방의 어둠이 릴리스의 품처럼 포근하더라.
“도대체 무슨 꿈을 꾸고 있던 거야? 현실의 네가 위험한 상태까지 갔었어.”
릴리스도 그 전의 꿈은 보지 못한 것 같다.
그 깊고 깊은 어둠을 떠올리는 것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악몽이었어요.”
내가 릴리스에게 두른 손에 힘을 주자 그녀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 괜찮아. 내가 함께 있어줄 테니까.”
마음이 평안해지는 그 손길에 가슴이 몽글몽글 풀어졌다.
너무도 편안한 품이지만, 해야할 말은 해야했다.
“…죄송해요, 릴리스.”
“뭐가?”
“릴리스를 걱정시킨 것도, 까먹은 것도, 그리고….”
떠오르는 것은 나를 보며 눈물을 흘리던 릴리스.
그 모습은 내 머릿속에 박혀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울게 만든 것도요. 전부 죄송해요.”
“괜찮아. 네가 잘못한 것도 아니었고. 나는 오히려 다시 돌아와줘서 기쁜걸?”
릴리스는 마음이 매우 넓었다.
그렇게 한동안 그 부드러운 품을 만끽하던 나는 아차 싶어 고개를 들었다.
“이제 어떡해요?”
“뭘 어떡해?”
“현실로 나가는 방법이라던가….”
그러자.
릴리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왜 필요해?”
“…네?”
당연한 거 아닌가?
“여기 꿈이라면서요?”
“응.”
“그러면 당연히 나가야-”
“그러니까. 왜 나가야 해?”
“…?”
지금 릴리스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릴리스가 입을 열었다.
“굳이 현실로 나가지 말고 계속 여기 있자. 여기라면 네가 아파하지 않아도 돼. 네가 가장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곳이야.”
“자, 잠깐만요. 여기서 살라고요? 꿈 속에서?”
“안 돼?”
“……”
너무도 당당한 릴리스의 어투에 말문이 막혔다.
“이 곳이라면 네가 다칠 일도 없어. 네가 평생 아프지 않아도 돼. 너를 위협하는 모든 것을 차단할 수 있어.”
말을 이어가는 릴리스의 눈에서 붉은 기운이 반짝였다.
“다른 인간들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아도 좋아. 너를 위험하게 만드는 인간관계도 전부 잘라버릴 거야.”
“…아무리 그래도 어둠 속에서 살라니-”
“그게 문제야?”
딱!
릴리스가 손가락을 튕기자 사방의 어둠이 밀려났다.
밀려난 어둠을 대신하는 것은 넓은 방.
방의 모습은 아주 익숙한 것이었다.
‘…내 기숙사?’
어디를 봐도 이질감이 들지 않았다. 완벽하게 구현된 내 기숙사 방이었다.
“어때? 똑같지?”
“……”
“마음에 안 들어?”
딱!
다시 손가락을 튕기자 풍경이 또다시 밀려나며 이번에는 보기만 해도 시원한 바닷가로 바뀌었다.
딱! 딱! 딱!
화려한 밤거리.
드림랜드 마법의 숲처럼 나무가 울창한 숲.
그리고 다시 기숙사 방.
“어디든지 갈 수 있어. 네가 원한다면 다른 은하의 장소도 가능해. 장소는 문제가 되지 않아.”
분명 매력적인 곳이었다.
분명 아름답고 생생한 구현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지나가는 풍경 속에서 소름 돋는 사실을 알아챘다.
“…사람은 없네요.”
바닷가, 밤거리.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그럼에도 지나간 풍경은 삭막하기 그지없었다.
“인간들은 너무 불안정해. 같이 살기에 변수가 너무 많아.”
“저도 인간이예요, 릴리스.”
“넌 달라.”
“릴리스-”
“넌 다르다고.”
붉은 안광이 더 밝아졌다.
나를 끌어안은 그 자세 그대로 침대에 눕는 릴리스.
우리가 항상 잠을 청하던 그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이불이 저절로 우리를 덮으며 릴리스의 향기가 확 다가왔다.
“평생 같이 있을 수 있어.”
“우리 둘만의 세상이야.”
“그 누구도 방해 못하는 우리만의 세상.”
“상상해봐. 매일 아침 서로를 키스로 깨워주는 거야. 순서는 매일 번갈아 가면서로 할까?”
“아침은 네가 좋아하는 올드원 구이로 해줄게. 여기라면 사냥을 갈 필요도 없어. 마음껏 먹을 수 있을 거야.”
“학교도 갈 필요 없어. 계속해서 같이 있는 거야.”
“점심은 외식으로 할까? 저번처럼 데이트를 하자. 스위트 러브도 구현할 수 있어. 이번에는 직원의 방해를 받지 않을 거야.”
“저녁은 집에서 먹자. 은은한 불빛과 함께 느긋하게 먹는 거야. 아! 서로 먹여주는 건 어때? 해보고 싶지 않아?”
“양치도 같이, 씻는 것도 같이, 잠자리도 같이 드는 거야. 이렇게 한이불 속에 들어가서 소곤소곤 수다를 떠는 것도 좋지 않아?”
“그리고 원한다면…….. 매일 매일 사랑을 나눌 수도 있어. 뜨겁고…..정열적인……”
꾸욱…
릴리스가 내 귓가에 입술을 누르며 속삭인다.
“사랑을….”
이어서 마주본 릴리스의 눈은 완연한 적안을 띄고 있었다.
새빨간 핏빛의 눈은 사람을 매료시키는 힘이 있었다.
릴리스가 말한 생활은, 당연히 좋았다. 최고였다.
장담할 수 있다. 저런 인생이라면 분명 행복할 것이라고.
듣기만 해도 행복한 그런 인생이었다……
…하지만.
“…릴리스.”
내 표정에서부터 답을 읽었는지 릴리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왜.”
“그러지 마요.”
그리고 일그러진 순간 릴리스의 눈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빛이 잠깐 흐러졌었다.
‘좋아. 완전히 마음을 정한 게 아니야. 아직 가능성은 있어.’
“릴리스의 마음. 십분 이해해요. 불안한 거죠? 제가 없어질 까봐.”
“……”
릴리스는 내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미안해요. 이렇게 불안하게 만들어서. 제가 잘못했어요.”
“…말했잖아.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잘못한 건 너를 찌른 그 인간이 잘못한 거지.”
“그래도 걱정시킨 건 저잖아요. 사과는 해야겠어요.”
릴리스는 아직도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안 된다.
릴리스는 아직 완전히 마음먹지 않았을 뿐이지. 사실상 이미 실행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의 망설임은 내 의사에 대한 고민이겠지.
이미 준비와 실행까지 전부 끝내놓고서도 나를 존중해주고 있는 것이다.
‘…정말, 못 말리는 외신님이야.’
또 그만큼 사랑스러운 외신님이다.
릴리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방법은 간단하면서도, 또 어려운 것이었다.
“릴리스.”
고개를 돌리며 살짝 거리를 둔 릴리스에게 도로 달라붙으며 안겼다.
“아직, 제가 답을 못 드렸죠?”
내 말에 릴리스의 귀가 움찔거리며 반응했다.
“일찍 말해야 했는데. 늦어서 미안해요.”
모르긴 몰라도 약속한 일주일은 훌쩍 지났을 것이다.
“저의 답은….”
잠시 숨을 고른 나는 말을 이었다.
“전 아직도 가족인 릴리스를 포기하지 못하겠어요.”
릴리스의 고개가 휙 돌아 나를 향했다.
“…뭐?”
그래. 나도 미친 소리인 거 다 안다.
기껏 마음 정리하겠다고 시간 달라던 놈이 내린 결론이 정리 안한다 선언이다. 미친 거지.
하지만 어쩌겠는가.
“저는 가족인 릴리스도 좋아해요. 포기 못하겠어요.”
릴리스의 안광이 더욱 붉어졌다.
이대로라면 바로 이 꿈 속에서 영원히 살게 될 터.
하지만 내 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저건 전제에 불과하다.
“그런데 전 이성으로서 릴리스도 좋아해요. 이것도 포기 못해요.”
“…그럼 어쩔려고?”
“그래서….”
나는 심호흡을 했다.
릴리스의 마음을 돌리는 방법.
그건 바로….
“사랑해요, 릴리스. 저랑 결혼해주세요.”
진심을 전하는 것이다.
내 말을 듣는 순간 릴리스의 초점이 흐려졌다.
흔히 말하는 얼빠진 표정의 릴리스.
“….뭐..?”
바람 세는 소리처럼 들리는 작은 질문.
제대로 들리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다면야….
나는 고개를 쭉 빼 릴리스가 했던 것처럼 릴리스의 귀에 입술을 꾹 눌렀다.
“저랑 결. 혼. 해주세요.”
“!!!!!!”
의미모를 비명을 빼액 지른 릴리스가 이불을 박차며 나와 거리를 벌렸다.
“뭐, 뭐엇?! 가, 갑자기 그, 그게 무슨…!”
이에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흐음…. 고민을 해봤는데 말이죠? 결국 저는 가족과 사랑하는 여자 릴리스 둘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전부 가질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고민해봤는데…”
남녀끼리 진심으로 사랑하여 만들어지는 최초의 가족.
“부부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으…으으…”
당황했다.
누가 봐도 당황했다.
덕분에 릴리스의 붉은 안광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가, 갑자기 프러…포, 포즈라니…”
“갑자기라뇨. 이미 연인단계도 넘어섰는데.”
솔직히 이럴 타이밍은 좀 지나지 않았나 싶다.
이미 같은 방에서, 같은 침대에서, 같은 이불 덮고, 같이 자기까지 하면서.
“릴리스. 이리 와요.”
팔을 활짝 벌리고 기다린다.
나와 거리를(그래봤자 침대 구석이지만) 둔 릴리스는 떨리는 눈으로 나를 봤다.
“릴리스.”
다시 불러도 오지 않길래 내가 가기로 했다.
“자, 잠깐…! 오지 맛!”
“계속 같이 있자고 했잖아요. 애초에 그것부터 프러포즈 아닌가요?”
그런 의미에서 릴리스가 말한 일상은 신혼생활 아닐까?
“그런 의도로 말한 게…. 읏…”
말하는 동안 옆으로 다가간 나는 릴리스의 가느다란 허리를 당겨 안았다.
절대 놓아주지 않겠다고 선언하듯 양손으로 꼬옥 감싸 안았다.
“아…아읏…”
맞닿은 피부로 릴리스가 몸을 떠는 것이 느껴졌다.
‘…귀여워라.’
분명 방금까지만 해도 릴리스가 나를 놓아주지 않았건만, 지금은 내가 붙잡고 있다.
한순간에 뒤바뀐 입장.
“물론 결혼식은 나중에 해요.”
“…응?”
“저는 아직 아카데미를 좀 더 다니고 싶어요. 더 많은 관계를 쌓아가고 싶어요. 기껏 릴리스 덕분에 퇴학도 면했는데 자퇴하기는 좀 그렇기도 하고.”
그 순간 릴리스의 안광이 불타오르려 했다.
“여기서라면 지금 당장에라도 결혼식을-”
“릴리스.”
나는 부드럽게 말을 끼워넣었다.
“저는 말이죠. 꿈이 있어요. 뭔지 맞춰보실래요?”
“…몰라. 지금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신혼여행은 어디로 갈까요? 요즘 대륙 서쪽에 자리한 섬이 그렇게 인기라던데.”
“자, 잠깐만….”
“신혼집은 어디로 정할까요? 화려한 수도에? 아니면 조용한 시골에? 아, 바닷가도 좋겠네요.”
“기다려 보라니까…?”
“매일 아침마다 서로를 키스로 깨워주는 거 어때요? 서로 번갈아 가면서.”
“!!!”
무언가를 깨달은 릴리스가 말을 멈췄다.
“아침은 올드 원 구이도 좋지만, 가끔은 제가 해드리고 싶어요. 아, 그럴려면 요리 연습도 해야겠네요.”
“졸업했으니 정말로 학교 안 가도 되네요. 계속 붙어있을 수 있겠어요.”
“점심은 외식으로 할까요? 저번처럼 데이트하는 건 어때요? 가끔은 스위트 러브에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저녁은 집에서 먹어요. 은은한 불빛과 함께. 아! 서로 먹여주는 건 어때요? 알콩달콩.”
“양치도 같이, 씻는 것도 같이, 잠자리도 같이 드는 거예요. 어쩌면 자기 전에 이렇게 나란히 앉아서, 서로를 껴안고 지금처럼 수다를 떨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원한다면야…….. 매일…음…..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노력해볼게요.”
마지막 말과 함께 고개를 들어 릴리스와 시선을 마주했다.
마주친 릴리스의 눈에서 붉은 기운은 찾아볼 수 없었다.
릴리스의 속눈썹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어때요. 마음에 들지 않아요?”
“……”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손을 뻗어 릴리스의 가느다란 손가락과 내 손가락을 엮어 깍지를 꼈다.
“저희가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축복받으며 결혼하면 좋겠어요.”
마주잡은 손에 힘을 주며, 릴리스의 깊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한다.
“…이게 저의 꿈이예요.”
“……”
“릴리스가 말해준 삶. 전부 현실에서도 가능해요. 축복받는 결혼은 현실에서 밖에 못하고요. 그러니까 릴리스.”
나는 릴리스와 이마를 맞대고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만 현실로 나가요, 네?”
릴리스는 멍하니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전히 눈은 애처롭게 떨리고 있었다.
그러더니…
“…흑….흐윽…”
릴리스의 눈가가 촉촉해지기 시작했다.
“…어라..?”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 뭔가 마음에 안 들었나?
갑자기 들이대서(?) 놀란 건가?
“…흑….고마워….아서…”
“…네?”
“..살아서….나랑…흐읍…그런 미래를…흐윽….그려줘서…”
“……”
“나…흡…..나….네가…피 흘리면서 쓰러지는 걸 보, 보니까….너무 불안….흑…..불안해져서….”
역시.
릴리스는 내 죽음을 눈앞에서 봤었다.
정말 미칠 듯이 불안했겠지.
간신히 살아났다고는 한들 한 번 잃었다는 것은 두 번째가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니까.
나도 만약 릴리스의 죽음을 보게 된다면…. 나는 당장에라도 릴리스를 따라갈 생각까지 할 것이다.
훌쩍이는 릴리스를 정면에서 안아주며 머리를 토닥토닥 두드려줬다.
“저도 알아요.”
“끄읍….사랑해….. 사랑해, 아서. 너무…. 너무 사랑해…”
“…저도 사랑해요, 릴리스.”
아, 눈에 먼지가 들어간 것 같다.
이상하게 눈가가 촉촉해지려 그러네.
릴리스가 만든 세상에는 먼지가 없다고?
………..
…….
….
시끄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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