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8
블레이즈 백작가의 장남인 루크는 화염마법의 명가 블레이즈 가문의 사람답게 어릴 때부터 화염마법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줬다고 한다.
아카데미 실기 입학시험을 차석으로 돌파한 것이 그의 재능에 대한 증명이었다.
수석은……그 괴물은 논외로 치고.
아무튼 루크는 블레이즈 백작가를 물려받을 후계자이면서도 화염마법의 천재라는 엄청난 스펙을 가지고 있었고, 당연하게도 학기초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접근했으나…
나는 아직도 복도를 지나가며 들었던 그의 명언을 잊지 못한다.
-음? 뭐라고? 물 좋은 곳에 가지 않겠냐니?
-쉿! 쉿! 목소리 좀 낮추-
-물 좋은 곳이라… 아하! 바닷가를 말하는 건가! 역시 이런 날씨에는 시원한 바닷가가 잘 어울리지!!
참고로, 저 말을 했던 날은 1월 초. 역대급 한파가 몰아치던 날이었다.
여동생을 데려가도 되겠냐고 묻는 루크에게 질린 귀족자제들은 황급히 대화를 마무리하고 도망가버렸다.
그러자 혼자 남아서 중얼거리길.
-이냉치냉이라. 나도 본받을 자세군. 음!
…이런 사람이다.
그의 기행은 이걸로 끝나지 않았다.
작년 여름. 갑자기 아카데미 뒷산에 출몰하는 귀신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소문이 점점 커지자 귀신을 추적하기 위해 학생회를 위주로 조사단이 꾸려졌고 밝혀진 귀신의 정체는 바로 한여름에 정신수양이랍시고 산을 뛰어올라가는 루크였다.
그에 대한 괴담은 양파마냥 까도 까도 계속 나왔지만 이를 요약하자면 루크 블레이즈. 그는…
“무슨 소리야. 고양이가 어떻게 말을 해. 뭔가 착각한 거 아냐?”
“그런가. 그렇군! 배가 고파서 환청을 들은 모양이야!”
바보였다.
릴리스가 황당하다는 시선을 내게 보내왔지만.
‘죄송합니다만 저건 저도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어요…’
듣자하니 블레이즈 가문의 남자들은 늘 저런 성향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한다. 매우 다행인 일이지만 블레이즈 가문은 남아가 태어난 직후 반드시 여아가 태어났다. 그리고 그 여아는 자신의 오빠와는달리 매우 똘똘한 머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신은 공평하다는 말은 블레이즈 가문에서 증명되었다. 멍청하지만 강한 오빠와 똘똘하지만 연약한 여동생. 실로 대단한 균형이었다.
그리고 그 블레이즈 가문에서 역대 최고의 두뇌를 갱신했다는 소문의 주인공이 바로 루크다. 물론 반어법이다.
“배고프다니. 배낭에 식량은 어쩌고?”
흘끗 보니 그의 등에 매달린 배낭은 조금 홀쭉해져 있었다…..설마?
“다 먹었다! 총장님이 무언가 착각을 하신 모양이군. 하루치 식량이라고 하셨는데 한끼 식량만 들어가 있었다!”
…루크가 한끼에 기본 5인분을 먹는다는 소문이 사실인 것 같다.
“아서! 널 찾고 있었다!”
“나를? 왜?”
“내가 알기로 너는 지금껏 모든 필기시험에서 수석을 차지했다지?”
“…그런데?”
“좋아! 아서! 내 머리가 되어주지 않겠나!”
“…뭐?”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루크는 허리에 손을 올리며 당당하게 외친다.
“나는 멍청하다!!”
“….?”
그걸 본인 입으로..?
“따라서 똑똑한 사람이 나를 도와줘야 한다! 여동생이 그랬다. 뭘 모르겠으면 일단 똑똑한 사람부터 붙잡으라고! 나는 멍청하니 어디서 객사하기 딱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
“실제로 나는 지금 배가 고프다!”
나는 진심으로 루크를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와…. 어떻게 대화를 한지 몇 분 되지도 않았는데 머리가 다 아프지?’
이것도 재능인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루크에게 물었다.
“루크… 여기가 어떤 곳인지는 알고 있어?”
“아니, 전혀 모르겠다!”
…그렇겠지.
루크뿐만은 아닐 것이다. 릴리스의 말대로라면 우리가 원래 가야할 곳은 여기가 아니니까.
‘시험은 취소다. 여기서 더 진행할 수는 없겠지.’
따라서 현재 내가 목표로 해야할 것은 학생들의 구출과 탈출.
하지만 문제는…
‘이걸 설명하려면 릴리스부터 설명해야 하는데…’
상상해보자.
-얘들아 이거 봐라? 사실 내 패밀리어인 이 고양이는 외신이다? 놀랐지?
…믿겠냐고.
나 같아도 믿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야…
“루크. 이 시험의 과제가 뭐였지?”
“흠! 분명 시험기간인 4일간 살아남는 것 아니었나?”
“맞아. 하지만 총장님이 한마디를 덧붙이셨지. ‘적극적’으로 나선 학생이 높은 점수를 받는다고.”
나는 ‘적극적’을 강조하며 말했다
“맞다! 그랬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적극적이란 말은 무슨 뜻일까?”
“모르겠다!”
“단순한 생존이라면 적극적이라는 걸 어떻게 측정할 건데. 열심히 살아남기? 그건 당연한 거잖아?”
“그렇군! 생각치도 못했다!”
그래, 그렇겠지. 나도 방금 생각해냈거든.
“내 생각은 이래. 공간균열을 기간 안에 탈출해낸다면 가산점을 받는 게 아닐까?”
“오오!! 생존을 넘어 탈출까지! 과연 적극적인 태도다!”
나는 루크가 보지 못하는 각도에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됐다! 처음으로 만난 사람이 루크라 다행이야!’
처음 한 명을 속이는 게 어렵지 그 이후부터는 간단한 것이 거짓말이다.
루크는 바보지만 무력으로만 따지면 우리 학년을 넘어서 고학년 선배들과도 비빌 수 있는 강자다. 당연히 학생들 사이에서 인지도도 높았고, 이런 루크와 함께 다닐 수 있다면 학생들을 더 잘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학생들에게도 루크에게 해준 이야기를 똑같이 말해주고 설득해서 함께 카다스로 향하기. 그것을 목표로 잡았다.
미안하지만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루크를 더 속여야 했다.
슬며시 입술에 수분을 보충한 나는 천천히 운을 떼었다.
“루크. 진정한 남자란 무엇이라 생각해?”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루크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음…..! 진정한 남자라… 나는 우리 아빠 같은 사람이 진정한 남자라고 생각한다!”
루크의 아빠, 즉 블레이즈 가문의 현 가주.
당연히 직접 만난 적은 없다. 하지만 블레이즈 가문 특성상 루크와 비슷한 성격이겠지. 그렇다면.
“혹시 너희 아버지는 친우가 위험에 빠졌다면 어떻게 행동하시지?”
“당연히 돕는다! 그것이 남자니까!!”
“그래! 공간균열은 매우 위험한 장소야. 당연히 목숨을 잃는 학생이 나올 수도 있어.”
“으음…! 하지만 총장님은 위험할 때 바로 꺼내주신다고 했는데.”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의 상황은 이미 탈선한 열차와도 같았다. 누구도 예측할 수가 없겠지.
“혹시 모르잖아. 총장님도 사람이야. 아주 잠깐이라도 눈을 깜빡이실 때 학생이 다친다면?”
“그렇군!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야!”
이 순간 나는 전력을 다해 내 안에 잠재된 슬픔을 끌어올렸다.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릴리스가 없어진 꿈을 꿨을 때의 기억.
곧장 눈물샘이 자극되며 눈가가 찌르르 떨려왔다.
“루크. 나는 만약에 내 친우들이 크게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다면 매우 슬플 것 같아. 너도 그렇지 않니?”
그정도로 슬프지는 않겠지만 그들을 구하고 싶은 것은 사실이니까.
“…아서.”
루크는 내 말을 듣더니 갑자기 정색을 하고는 내게 다가왔다.
이런, 나름 필사의 연기였는데. 안 통한 건가?
가까이 다가온 루크는 내 양 어깨를 잡더니…
“넌 진정한 남자다! 아서! 곤경에 처한 친우를 돕는 것은 멋진 일이다. 그래! 시험 점수는 중요하지 않아! 그게 바로…”
루크는 숨을 들이키더니 온힘을 다해 외쳤다.
“낭만이니까아아아!!!!!!!!”
휴, 성공한 모양이네.
고막이 좀 아프긴 하지만 이정도야 희생해야지…
“그렇다면 루크. 나와 함께 위험에 빠진 친우들을 구하러 가지 않을래?”
내가 내민 손을 루크는 덥썩 잡아챘다.
“기꺼이!!”
와, 진짜 알기 쉬운 녀석이네.
—-
그렇게 동맹을 맺은 우리는 숲을 지나가고 있었다.
울창한 나무들이 빽빽하게 서 있어 여기가 그곳 같고 그곳이 여기 같지만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최고의 안내자가 있었다.
내 품에서 얼굴만 쏙 빼놓고 있는 릴리스는 주변 학생들을 찾아내 정확한 방향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었다.
“오오! 아주 귀여운 고양이구나. 네가 패밀리어를 얻었다는 소문은 들었다. 가문 일이 바빠서 직접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릴림이라고 해.”
“릴림! 잘 어울리는 이름이구나!”
“…냐아….”
릴리스는 지나치게 활발한 루크에게 기가 빨린 것 같다.
그렇게 릴리스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계속해서 이동하던 그때.
-아서.
“우왁?!”
“무슨 일이지! 적인가!”
갑자기 머릿속에 목소리가 들렸다. 귀를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뇌를 직접 울리는 듯한 불쾌한 감각이었다.
-나야.
분명 전해지는 방식은 달랐지만 익숙한 목소리였다.
나는 내 품으로 고개를 숙였다.
“…릴리스?”
작게 속삭이자 릴리스가 고개를 끄덕인다.
-다행이네. 혹시나 안 걸릴까 봐 걱정했는데. 아, 대답은 하지 마. 이 목소리는 너한테만 들리는 거니까.
“아서! 무슨 일이냐!”
“어, 어…..미안. 나무뿌리를 잘못 밟았나봐.”
“조심해라! 여긴 나무뿌리가 사방으로 튀어나와 있으니.”
“으, 응…”
나는 릴리스를 조금 들어올려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마법이예요?”
-응, 저 원숭이 같은 인간이 옆에 있으면 의사전달하기가 애매하니까.
…원숭이 같다니. 너무 하시네.
-이 마법은 양방향이야. 한번 걸리면 너도 나한테 마음으로 말 할 수 있어. 마음 속으로 외친다고 생각해봐.
‘마음 속으로 외친다니 그게…’
-가능할리가 없잖아요?
-오, 잘 하네.
…이게 되네?
그 뒤로 몇 번인가 테스트를 거친 나는 얼마 안 가 익숙하게 릴리스와 마음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숲길을 걸은 지 한 시간만에 넓은 공터를 찾을 수 있었다.
공터에는 색색의 열매가 열린 덩쿨들이 늘어져 있었다.
“오! 맛있어 보이는 열매군. 마침 배 고팠는데 잘 됐어. 어디 하나…”
“잠깐!”
나는 다급한 손길로 덩쿨로 향하는 루크를 막아섰다.
“잊어버리지 마. 우린 지금 공간균열에 들어와 있어. 저런 열매에 독이 있을 수도 있다고.”
“그렇군! 역시 넌 똑똑해. 여동생도 분명 아무거나 주워먹지 말라고 했다!”
이름 모를 루크의 여동생이여, 당신은 도대체 무슨 싸움을 해오신 겁니까…
새삼 루크의 여동생이 존경스러워졌다.
나는 덩쿨에 달린 열매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이건 독초. 이건 식용…..’
대부분 아는 열매라 구분하기는 쉬웠지만, 이걸 루크에게 전해주는 게 문제였다.
바로 말해버리면 어떻게 알아낸 건지 의심할 수도 있다.
변명거리를 생각하던 그때.
“냠!”
릴리스가 열매 하나를 똑 따서 먹었다.
그리고 나를 흘끔 바라보았다.
‘아하!’
“루크. 릴림이 먹는 열매를 따라 먹어봐. 저건 다 안전한 열매일 거야.”
“오오! 역시 고양이는 대단해!”
릴림이 먹은 열매를 똑같이 따먹은 루크는 몇 번 우물거리더니 엄지를 척 세워보였다.
“음! 새콤달콤 맛있다! 아서 너도 먹어봐라.”
루크가 건넨 열매는 과연 새콤달콤하니 먹을만 했다.
“혹시 모르니 열매를 더 챙겨가겠다. 열매는 수분과 비타민을 보충할 좋은 수단이니까!”
배낭을 끌어내린 루크가 열매를 챙기고 있자니 릴리스가 내게 다가왔다.
-찾았어.
-몇 명이요?
-80m 11명.
-…네?
11명이요?
갑작스러운 큰 수에 당황하기도 잠시, 이어지는 릴리스의 말에 나는 한 번 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잠깐, 10명으로 줄어들었…..어?
수가 줄어들었다는 소리는…
“이런 젠장! 루크!”
“음? 무슨 일이지?”
“80m 떨어진 곳에서 전투가 이뤄지고 있어! 이미 한 명 당한 모양이야!”
“뭐라?!”
주웠던 열매를 내팽개친 루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디냐!”
일으킨 그의 몸에서는 불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릴리스가 방향을 가리키자 불꽃을 일으키며 달려가는 루크.
같은 방향으로 뛰어간 나는 코를 찌르는 비린내에 인상을 팍 구겼다.
루이스에게 괴롭힘 당하며 익숙해진 냄새였다.
‘피냄새!’
발걸음을 서두르자 전투의 소리가 들려왔다.
“죽어라 이 괴물아!”
“온다! 피해!”
높다란 나무를 뚫고 보이는 것은…
‘…거인?!’
덥수룩한 털을 옷처럼 덮고 있는 분홍색 피부의 기괴하게 생긴 거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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