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
1.
“초현상특무부, 인가…….”
히마리로부터 뜬금없는 입부 제안.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지금까지 미뤄두었던 ‘동아리’ 가입 여부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공원에서 히마리와 여러 대화를 나누었지만 대부분은 초현상특무부에 관한 것과 나의 히어로 활동에 대한 것,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궁금증 등이었다.
그리고 그런 대화들의 결론은 결국 하나로 귀결되었다. 바로, 초현상특무부에 입부하라는 것.
“확실히 매력적인 선택지기는 한데.”
밀레니엄의 특성상 여러 가지 후보군이 존재하지만 지금 나에게 직접적으로 입부 제안을 한 동아리는 엔지니어부와 초현상특무부, 두 곳이었다.
다른 동아리를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세미나라거나, 베리타스, C&C. 모두 관심이 가는 동아리들이기는 했다.
허나,
“지금 나의 상황에 가장 적합한 동아리는 엔지니어부와 초현상특무부 밖에 없어.”
내가 히어로 활동을 겸할 수 있는 동아리.
그것이 내 상황에 가장 적합한 선택지였으니.
두 동아리 모두 장단점은 명확했다.
전자는 히비키의 말대로 내가 직접 장비들을 구상하고, 제작하며 더 나아가 보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실질적인 제작자인 우타하와 히비키, 두 사람과 더욱 빠르게 교류하며 의견을 나눌 수 있겠지.
문제는… 내가 ‘엔지니어’에 관해 일말의 지식도 가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 더 나아가 히어로 활동을 하면서 과연 동아리 활동을 겸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
‘아마 두 사람은 내 진실을 알고있는 이상, 나름대로 편의를 봐주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히어로 활동을 하기 위해 동아리 활동을 뒷전으로 미뤄두면서까지 엔지니어부에 입부할 가치가 있는가.
내 본래 목적인 학생과 히어로로써의 생활이 무너지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
‘그렇게 되면 본말전도나 다름 없지.’
그와 반대로 후자는, 대외적으로 폐쇄적인 성향을 띠고 있는데다 부원도 히마리와 에이미 두 명뿐이라 정보 유출의 염려가 적고, 내가 히어로 활동에 더욱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히마리와 에이미의 도움도 직접적으로 받을 수 있을 것이고.
이 부분은 확실한 이득이다. 무려 전지(全知)와 뛰어난 현장 요원의 도움을 받는 것이니.
다만, 초현상특무부의 단점이라면 바로 세미나의 산하 조직이라는 점과, 현재 나에게 주어진 정보가 한없이 적다는 점일까?
또한 가끔씩 있을 초현상특무부의 동아리 활동도.
‘뭐, 사실 이 부분은 단점이라고 하긴 좀 그렇지.’
세미나 관련 문제는 학생회장인 리오와 상극인 히마리가 알아서 해결해줄 것이고, 동아리의 임무도 내 히어로 활동과 어느정도 영역이 겹친다.
데카그라마톤, 게마트리아, 온갖 이상현상.
근본적으로 키보토스와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 그러니 나로썬 이러한 일들을 뒤쫓고 연구하는 것은 히어로 활동의 연장이라 볼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살짝 기대하는 바도 있었으니.
바로, 나 자신에 관한 것.
‘왜 나는 블루아카이브에 떨어졌는가.’
‘어째서 나는 이름에 모자이크가 쳐져있는가.’
‘나는 왜 밀레니엄 모브의 몸에 빙의했는가.’
‘내 능력의 근원은 도대체 무엇인가.’
지금껏 신경쓰지 않았던 궁금증들.
어쩌면 초현상특무부에 가입하고, 활동하는 것으로 저 비밀들을 언젠가 캐낼 수 있지 않을까.
어렴풋이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 정도면 결론났네.”
고민을 이어가다보니 어느샌가 마음 속 저울이 한쪽으로 기울고말았다. 히비키에겐 미안하지만 엔지니어부에는 입부할 수 없을 것 같다 말해놔야지.
이미 늦은 저녁이었지만 나는 곧바로 히비키에게 모모톡을 보냈다.
깨있겠지? 전에도 일어나 있었으니 아마 그러겠지.
[나 – 히비키, 일어나있어요?]
[네코즈카 히비키 – 응. 무슨 일이야?]
역시나 곧바로 돌아오는 대답.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곧바로 사죄를 전했다.
[나 – 동아리에 관해서에요. 좋은 제안이 들어와서 엔지니어부가 아닌 다른 동아리에 입부하기로 했어요. 기껏 권유해줬는데 미안해요.]
[네코즈카 히비키 – 응. 괜찮아.]
[네코즈카 히비키 –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그 대신에 엔지니어부에 자주 놀러와줬으면 해. 너랑 함께 이야기하는건 즐겁거든.]
부끄럽게 뭔 소리를 하는거야.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메시지를 입력했다.
[나 – 네. 사죄의 의미로 나중에 맛있는 과자 사서 엔지니어부로 찾아갈게요.]
[네코즈카 히비키 – 응. 그렇게 해줘.]
참, 언제봐도 착한 애란 말이지.
말투는 조금 차가워보여도 정말 강아지처럼 사람을 좋아한다는 기색이 하염없이 드러나는 아이다.
심지어 내가 입부한 다른 동아리가 어떤 곳인지도 묻지 않는 섬세한 모습까지.
진짜로 다음번에 만나면 맛있는 과자 사줘야지.
직후, 나는 곧바로 히마리에게도 모모톡을 보냈다.
[나 – 제안을 받아들이죠. 입부할게요.]
[아케보시 히마리 – 그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2.
다음날 아침, 집으로 찾아온 에이미의 인도에 따라 초현상특무부의 부실에 도착했다.
“이곳이 초현상특무부의 부실이랍니다.”
“……호오.”
“어떠신가요? 밀레니엄에서 가장 안전하고, 비밀스러운 장소에 오신 소감은?”
“신기하네요. 그리고… 한번 오고가기가 참 귀찮은 장소이기도 하고요. 길이 뭐 이리 어렵습니까.”
“후훗, 그런가요? 다행이네요. 그런 감상을 느끼셨다면 설계 목적을 이룬 셈이네요.”
“그러십니까.”
게임에서는 길이 아주 미로같고 비밀로 꽁꽁 싸매져있다길래 어느 정도인가 싶었는데… 오히려 게임에서 더 축소되서 묘사된 것이 분명했다.
무슨 미스테리오의 환상에 걸린 스파이더맨을 간접체험 하는줄 알았다. 뭐 이리 복잡하게 만든거야.
…이걸 나중에는 내가 외워서 도착해야 한다고?
‘이걸 어떻게 외우냐.’
그런 시선을 히마리에게 보내고 있자니 그녀는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후후훗, 하며 웃었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요?”
이내 홀로그램을 툭툭 터치하더니 히마리는 어느샌가 덥다며 겉옷을 벗어던진 에이미와 얼떨떨한 기색을 보이는 내 앞으로 홀로그램을 보내왔다.
그곳에는 아주 간결한 문장 하나가 적혀있었다.
정말로 내 예상과 한치도 맞지 않는 문구가.
[신입 부원 환영식]
“?”
뭐임? 이거 진짜 뭐임?
내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이게 뭐냐는 듯이 히마리를 바라보았으나 그녀는 헤실헤실 미소를 지으며 드론들을 조작하고 있었기에 내 표정을 보지 못했다.
그녀는 언제 준비해놓은지 모를 음식들을 꺼내오며 빠른 속도로 책상 위에 정렬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중간중간 ‘처음 해보는 파티, 조금이지만 마음이 들뜨네요. 제가 동아리에 들어왔을 때는 못해봤던 건데…….’ 라며 중얼거리는 히마리의 목소리를 들은건 내 착각이리라.
심지어 에이미는 그런 히마리를 도와 식기를 정렬하고 있었다. 너도 알고 있었던거니?
대체 무슨 상황일까.
당최 상황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난 분명히 동아리 소개나, 히어로 활동과 같은 중요한 용건을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내가 너무 진지했던건가.
…하긴 블루아카이브에서 진지한 에피소드가 얼마나 많이 나왔던가. 대부분은 이러했었지.
그제서야 내 흔들리는 눈빛을 알아봤는지 히마리는 다소 붉어진 표정으로 헛기침을 하더니 당당한 표정으로 가슴께에 손을 얹으며 말을 시작했다.
“흐흠! 오늘은… 새로운 신입부원이 들어온 날이니까요. 마땅히 축하 파티를 해야하지 않겠어요?”
“아, 네.”
“후훗, 조금 더 기뻐해도 좋답니다. 밀레니엄의 청초한 절벽 위의 꽃이자 모두가 동경하는 최고의 천재 병약 미소녀 해커인 제가 축하드리는 것이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신입 부원 씨는 운이 좋은, 행운아-”
“부장. 더운데 에어컨 틀면 안 돼?”
“에이미…! 지금은 제가 중요한 말을 하고있는 중이잖아요! 그리고 음식이 식어버리니 에어컨은 안돼요!”
“전부 부장이 혼자 열내서 그런거잖아.”
“그냥 에이미가 몸에 열이 많은 것 뿐이잖아요! 에잇,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죠? 신입 부원 씨!”
“…….”
아.
순간적이나마 깨달아버렸다.
내가 이 아이들을 어떤 식으로 대하고 있었는지를.
‘어느 순간부터 나는 두 사람을 경계하고 있었구나.’
처음으로 내 정체를 밝혀낸 사람들이라 그런걸까.
아니면 나로썬 쉬이 짐작하기 힘들 정도로 뛰어난 사람들이라는 생각 때문에?
뭐가 되었든 내 심리는 어느 순간부터 초현상특무부를 신뢰한다기보단 이용한다는 쪽에 쏠려있었다.
이건, 잘못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동아리 활동은 누군가를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그딴게 아니지 않은가?
‘스스로 신뢰가 가능하다고 해놓고, 멍청하게.’
머릿속에 한가득 꼬여있던 생각의 실타래가 풀려나니 당혹스럽게만 느껴지던 이 상황도 다르게 다가왔다.
뜬금없는 환영식을 여는 두 사람이 아닌,
진심으로 나를 환영해주려고 노력하는 두 사람으로.
‘……아무래도, 나도 아직까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어른’이 되지 못한 모양이야.’
새삼스레 ‘선생’의 역할을 실감했다.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했던게 사실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챈 순간, 내 입가엔 저절로 호선이 그려졌다. 이내 터져나오는 웃음.
“하하!”
갑작스럽게 내가 웃음을 터뜨린 탓일까, 티격대던 두 사람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변하는 것이 보였다.
내 반응을 각자 어떻게 판단했는지는 몰라도, 그 순간을 기점으로 부실의 분위기는 급격히 변했다.
한없이 긍정적인 쪽으로.
히마리는 기쁘다는 듯이 연신 자존감 넘치는 표정으로 떠들어댔고, 에이미는 나름의 인사 표시인건지 특유의 무표정으로 음식을 내 입에 넣어주는 등의 행동을 보였다.
그리고 나 또한… 마찬가지로 그들 사이에 동화되어 즐겁게 웃고 떠들었다.
나름,
성공적인 동아리 환영식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3.
[여기는 D.U 로스트웨이 서부. 발키리 본부에 전파한다. 지금 당장 지원을 요청한다! 다시 한번 전파한다, 여기는 D.U 로스트웨이 서부! 지금 당장 긴급 지원을 요청한다! 가능한 많은 병력을 지원해 주길……, 젠장, 오잖아! 막─!]
뚜둑.
치지지직─….
“…결국, 완전히 바깥에 풀려났나. 코사카 와카모.”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거야, 유키노?”
“…….”
유키노라는 이름으로 불린 소녀는 대답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이 먹구름으로 가득한 하늘이 마치 자신들의 음울한 미래를 점하는 듯했다.
총학생회장이 실종되고, SRT는 사실상 폐교되기 직전인 상황이 되었다.
이대로라면 자신들은 FOX소대라는 이름마저 잃고, 총학생회에 의해 뿔뿔히 흩어지게 되리라.
그 어둑한 미래를 직감한 것은 비록 유키노 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 또한 직감한 듯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어려운 질문이었다.
단순히 작전을 수행하는 것이었다면 이보다는 결정을 내리기 쉬웠으리라. 허나, 지금은 작전이 아니다.
현실.
한없이 비참하고, 불행한 현실이다.
SRT와 동료들에게 완벽한 소대장이라 칭송받던 자신도, 결국 저항할 수 없는 현실의 풍파에는 나약한 한 명의 사람에 불과했던 것일까.
유키노는 대원들의 물음에도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모르겠다. 이제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유키노…….”
“이런 상황은 교본에 나와있지 않았어. 어떤 선택을 내려야만 하는지, 무슨 판단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자신은 한없이 무력했다.
그리 자신을 자책하며 점차 내리기 시작한 빗물 사이로 절망감 어린 눈물을 감추고 있을 무렵,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정답, 제가 대신 말해드릴게요.”
익숙하면서, 한없이 낯설게만 느껴지는 목소리.
마치 간교한 뱀이 혓바닥을 낼름거리는 듯한 불쾌감이 느껴지는 울림.
유키노는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시라누이 카야.”
총학생회의 방위실장, 시라누이 카야가 있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FOX 소대 여러분.”
“네가, 여기엔 무슨 일이지? SRT의 처분은 진작 결정난 것 아니었나?”
“정확히는 논의 중이죠. 내부적으로도 아직까지 의견이 갈리고 있는 중이라서요. 정말이지-.”
그녀는 자신의 뺨에 손가락을 얹으며 얇게 감겨있던 눈을 뜨더니 오만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멍청하게도 말이에요.”
유키노를 비롯한 FOX 소대 전부가 눈동자를 크게 뜰 정도의 갑작스러운 변화.
이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카야였지만 그녀는 드러낸 속내를 전혀 감추지않고 그들에게 말했다.
“FOX 소대 여러분. 제가 한가지 제안을 하죠.”
“절대로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요.”
그 순간,
유키노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지만 이어진 카야의 말에 그 모든 고민이 사라짐을 느꼈다.
“제가 당신들의 SRT를 부활시켜 드리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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