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4
1.
“그래서 선배, 저희 어디로 가나요?”
“후후. 걱정마세요. 이 밀레니엄 최고의 천재 미소녀이자 절벽 위의 꽃인 제가 모두 계획을 짜놓았으니 나나시는 그저 따라오기만 하면 된답니다.”
“오. 역시.”
다음 날, 나는 히마리가 말했듯이 함께 쇼핑을 하기 위해서 밀레니엄 시내로 나왔다.
아직도 추위가 가시지 않은 겨울날의 날씨가 바람을 타고 우리를 휩쓸었다. 추위를 잘타는 히마리가 걱정되어 그녀를 바라보니 방한 대책을 잘 세워놓았는지 두툼한 외투 속에서 입김을 내뱉는 히마리가 보였다.
얼굴만 뿅 하고 튀어나온 모습으로 두꺼운 팔을 힘겹게 움직이며 홀로그램을 조작하는 모습이 귀여웠기에 쓰게 웃으며 그녀를 구경하길 잠시.
“자, 이걸 보시지요. 나나시!”
“오오.”
밀레니엄 시내의 지도가 펼쳐지더니 히마리가 계획해놓았다는 동선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당당하게 보여주는 동선을 슬쩍 읽어본 나는 어딘가 이상한 점을 눈치채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쇼핑은 안합니까?”
“앗. …흠흠! 그럴리가요! 이왕 바깥에 나온 김에 우선은 나나시랑 구경이나 조금 할 생각이었답니다?”
“아하. 뭐 그런거라면. 저도 환영입니다, 선배.”
그냥 쇼핑만 하고 들어가기도 좀 그렇지.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히마리에게 말했다.
“그럼 이제 갈까요?”
“후후. 좋답니다.”
그렇게 우리는 밀레니엄 시내로 향했다.
2.
눈이 내리진 않았지만 쌀쌀한 날씨 탓인지 길거리 곳곳에서 따뜻한 음식을 파는 노점들이 즐비했다.
아직 무정부 사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도 거리에는 시민이 가득했다. 수인, 로봇부터 온갖 학생까지.
게임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도심의 풍경이 생소한 감상을 안겨주었다.
평소에는 하늘을 날아다녔기에 제대로 보지 못했던 밀레니엄의 시내 모습. 가까운 곳에서 직접 살펴보는 것은 신선했기에 나는 히마리와 함께 시내를 거닐며 그것들을 구경했다.
눈을 빛내면서 도심을 구경하는 내 모습이 웃겼던 것인지 돌연 히마리 쪽에서 웃음 소리가 나왔다.
“후후, 어떤가요. 나나시? 당신은 활동에 집중하느라 이렇게 휴식도 제대로 못했었잖아요?”
“……선배.”
“조금 춥기는 하지만 나나시가 즐기는 모습을 보니 좋네요. 가끔씩은 이렇게 바깥에 나와볼까요?”
설마 히마리가 나한테 외출을 하자고 한 이유가 바쁘게 사는 나에게 휴식을 주고 싶어서였던건가.
벌이라는건 단순히 명목이고?
“저야 좋죠. 시간만 있다면 언제든지 어울려드릴게요. 선배.”
“그 말. 기억했다구요? 나나시. 이제부터 시도 때도 없이 부려먹도록 하겠으니 각오하도록 하세요. 후후.”
“오호. 그렇다면 저는 히마리 선배가 더 건강해지도록 항상 시간을 비워놔야겠네요. 이 참에 운동도 시작하시죠, 선배.”
미래를 기약하는 말을 주고받은 우리는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 푸훗 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베이지색 코트에 손을 찔러넣은 채로, 히마리는 입가에 손등을 올린 채로 미소를 지었다.
아, 이게 힐링이지.
아무런 고민따윈 없이 현재에만 집중하며 친구와 웃고 떠드는 이게 힐링이 아니고 뭐겠는가.
그렇게 몇 번이고 잡담을 주고받으며 웃고 떠들기를 몇분. 나는 거리를 걷던 도중, 거리에 있는 노점 중 하나에 시선이 절로 이끌렸다.
“아. 히마리 선배. 저희 저거 먹을까요?”
“어떤거 말이죠?”
내 물음에 히마리는 내가 가르킨 손가락을 따라 어느 노점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호떡집이 있었다. 나름 맛집인건지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서 주문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제가 사드릴게요. 오늘은 제가 벌 받는거니까.”
“후후, 그럴까요? 나나시의 안목을 한번 믿어보죠.”
“넵. 그럼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나는 히마리를 노점 주변에 세워놓곤 호떡집으로 가서 꿀호떡 두 개를 주문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호떡을 구우시던 수인 아저씨가 내 주문에 호탕하게 대답하더니 ‘조금만 기다리쇼!’ 라고 말했다.
몇분 뒤, 아저씨가 해맑게 웃으며 건네준 호떡을 받아든 나는 히마리에게로 돌아가 종이컵에 담긴 호떡을 히마리의 손에 쥐어주었다.
“어머. 신기해 보이는 음식이네요.”
“호떡이라고 해요. 반죽 안에는 꿀이 들어있어서 맛있을거에요. 어서 드셔보세요.”
“맛있어보이네요. 그럼 저도 한입, 얌.”
나는 히마리와 나란히 서서 호떡을 먹었다.
적당히 들어있는 꿀과 반죽이 입안에서 뒤섞이며 달달함을 안겨준다. 지구에서 먹었던 것과 별반 다르지않는 맛이다. 나는 나름 만족하며 히마리를 쳐다봤다.
그녀의 입맛에도 맞을까, 싶어서 봤는데 히마리의 반응은 내 예상보다 더 재밌었다.
“으음! 이거 맛있네요! 달면서도 따뜻한게 제 취향에 딱 맞아요. 하나 더 먹고 싶어질 정도네요…….”
내가 천천히 거리를 구경하며 한입을 먹는 사이에 정말로 맛있었는지 다 먹어치운 히마리였다.
그에 나는 피식 웃으며 내 호떡을 건네주었다.
“그럼 제꺼라도 드실래요?”
“네, 네? 하지만, 그러면 나나시가…….”
나는 괜찮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애초에 많이 먹어보기도 했고, 선배를 위해서라면 양보를 못할 것도 없었다.
그러자 자신이 후배의 것을 뺏어먹는다는 사실이 부끄러운걸까, 얼굴을 붉히는 히마리가 보였다.
그녀는 내 호떡을 받아들더니 내가 한입 베어물은 장소를 잠시동안 응시했다. 이내 결심을 다진 듯 그 옆자리로 입가를 가져가 왕 베어무는 히마리.
이런 노점 음식이 의외로 입에 잘 맞는 것일까, 나는 그녀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구경하면서 미소지었다.
“너, 너무 빤히 바라보지는 마세요…….”
“아. 너무 맛있게 드시고 계시길래. 부담드려서 죄송해요. 고개 돌리고 있을게요.”
“…….”
그렇게 호떡을 다 해치운 히마리는 흠흠! 하며 헛기침을 하더니 내게 말했다.
“자. 이제 제대로 즐겨보도록 하죠.”
“그럴까요?”
아직 그녀가 짜놓은 계획은 다 해치우지도 못했으니 이제부터 바쁘게 움직일 차례였다.
“후후, 히마리 언니만 따라오세요!”
“헉.”
전부터 생각한건데 왠지는 몰라도 언니 소리를 참 좋아하는 히마리였다.
3.
그 뒤로 우리 둘은 히마리가 계획한 동선을 따라 온갖 장소를 돌아다녔다.
오락실, 도서관, 식물원, 백화점, 카페까지.
밀레니엄에서 운영되는 모노레일의 이동 동선에 맞춰서 그야말로 밀레니엄 전역에 있는 장소를 돌아다니며 우리는 시간이 가는줄 모르고 놀았다.
“선배. 정말로 빡세게 동선을 짜놓으셨군요.”
“빠, 빡세게? 설마 나나시, 오늘 돌아다니느라 많이 힘들었나요……?”
“아. 그게 아니라 엄청 세밀하게 계획을 짜놓은거에 대한 감탄입니다. 덕분에 재밌게 즐겼어요.”
“그, 그래요? 후후, 이 정도쯤이야 밀레니엄 최고의 천재 미소녀인 저에겐 간단한 일이랍니다?”
“선배, 병약 속성이 빠졌는데요.”
“아앗…!”
내 지적에 비명을 지르며 입을 가리는 히마리.
이럴 때마다 천연인 점을 드러내는게 또 귀엽긴 한 모습이었다.
현재 나는 히마리가 짜놓은 동선의 대부분을 클리어하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겸, 주변 카페에 들어와 그녀와 음료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단게 먹고싶다는 히마리의 요청에 초코케이크도 하나 더 주문해서 말이다.
바깥을 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며 노을이 비쳤다.
누렇게 진 하늘이 마치 오늘의 하루도 이걸로 끝이라며 알려오는 듯했다.
슬슬 거리의 모습도 누군가와 놀기 위한 장소가 아닌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으로 바뀌어가는 모습.
그에 나는 히마리을 슬쩍 쳐다보았다.
평소에도 병약한 그녀였기에 오늘 하루동안 바깥에 나왔으니 괜찮을까, 싶어서 눈길을 보냈으나 어째서인지 히마리 또한 나를 쳐다보고 있었는지 중간에 눈이 딱 마주치게 되었다.
“왜 쳐다봐요?”
“그, 그러는 나나시는요.”
“저는 그냥 선배 보고싶어서 본건데.”
“……읏?!”
농담으로 한번 푹 찔러보니 예상처럼 화들짝 놀라며 새하얀 얼굴이 토마토처럼 익어갔다.
그에 킥킥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농담이에요. 그냥, 오늘 날씨도 쌀쌀한데 히마리 선배는 괜찮나 싶어서 쳐다봤어요.”
“……그게 그거 아닌가요?”
“음. 생각해보면 딱히 틀린 말은 아니네요.”
결국 보고싶어서 본게 맞기는 하다.
고개를 끄덕이며 태연하게 말하니 히마리는 허탈하다는 듯이 피식 웃음을 흘리며 내 물음에 답했다.
“괜찮답니다. 덕분에.”
“전 별로 한게 없는거 같은데.”
“나나시가 있어서 추위를 느낄 틈도 없었어요.”
“엥. 그래요?”
뭔진 모르겠지만 그럼 다행이고.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히마리에게 슬슬 돌아가자며 운을 띄어보였다.
“이제 시간도 늦었고, 슬슬 돌아갈까요?”
“좋네요. 하지만… 가기 전에 한 군데만 더 들르고 가도 될까요?”
“저야 뭐, 상관없습니다.”
히마리의 제안에 카페를 나선 뒤, 우리가 향하게 된 곳은 밀레니엄 캠퍼스 인근에 위치한 옷 가게였다.
그것도 여성 옷가게. 지구에선 발도 못대던 장소!
‘크아악. 부담스러운 분위기가……!’
안으로 들어서자 수많은 여성의 옷들이 가득하다. 나로썬 적응하기 힘든 광경이었다. 이쁘긴 한데, 정확히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가격은 또 비싸.
“……서, 선배 옷 사실려고요?”
“아니요. 저 말고요.”
갑작스러운 여자다움의 폭격에 히마리에게 바짝 붙어서 물어보니 그녀는 내 물음에 부정했다.
그럼 여기 왜 왔어요. 으윽. 빨리 나가게 해다오.
나는 사방에서 넘쳐나는 여성여성한 분위기에 빛에 정화당하는 악마마냥 쪼그라들며 히마리만 졸졸 따라다녔다. 그녀가 무슨 말을 내뱉었는지 해석도 하지 못한 채로 말이다.
히마리는 휠체어를 자유자재로 운전하며 옷가게를 둘러보고 있었다. 나는 메이드마냥 그녀에게 달라붙으며 걸음만 옮겼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자, 나나시. 이거 입어보세요.”
“에?”
나는 갑작스럽게 눈앞에 내밀어진 무언가를 보았다.
정확히는 하나가 아닌 여러개의 옷들.
뭔가, 하얗고 검은색들의 상의와 치마.
그리고 목도리까지. 뭐임 이거.
“이, 이게 뭐에요?”
“나나시. 오늘도 데이- 크흠, 외출하는데 교복만 입고 왔잖아요. 그래서 드리는 선물이에요.”
“……네?”
“자, 어서요. 들어가서 입고 나와요.”
아니, 나도 집에 옷 있어.
그냥 여자 옷을 입는게 부담스러워서 그런거라고.
하지만 그런 항변은 내뱉지도 못한 채, 나는 히마리와 가게 직원에게 떠밀려 피팅룸에 들어와버렸다.
밀폐된 공간 속 비치된 거울에 엉성하게 옷가지를 집어든 채로 당황한 표정을 짓는 자신이 보였다.
“하아, 씨…….”
당장이라도 나가고 싶었지만 이대로 나가면 히마리가 진심으로 실망할거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나는 손에 들린 옷들을 내려다보며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정말로 입어야된다고? 이것들을?
‘그냥 교복이 편해서 그런건데……!’
히마리의 마음을 모르는건 아닌데. 오히려 이런 보답은 나한테 더 부담스럽단 말이다. 하지만 이미 들어와버린 이상 빠져나갈 구멍은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입어야했다. 그래. 이번만 꾹 참고 입어보자.
나는 그렇게 자신을 위로하며 가져온 옷들을 옆에다 올려놓고 걸치고 있던 교복을 벗었다.
슥- 스윽-
천이 살결에 스치는 소리가 울려퍼지길 몇분.
드디어 옷을 다 차려입은 나는 거울을 살펴보았다.
‘……이쁜건 뒤지게 이뻐요, 진짜.’
얄미울 정도로 여성스러운 몸매와 이쁜 얼굴.
가끔 거울로 볼때마다 느끼는건데 내 취향에 딱 저격하는 외모이긴 했다.
히마리가 준비해준 패션은 간단했다.
화이트 니트에 베이직한 블랙 컬러의 스커트, 그 위로 포근한 베이지색 아우터 코트. 그리고 목을 감싸는 흰색 여우털 목도리까지.
내 하얀 머리칼과 푸른 눈동자에 딱 맞았다.
차분한 패션에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포니테일도 풀어헤치자 패션 잡지에나 나올법한 모습이 그려졌다.
그에 살짝 마음이 들뜨는 것을 느낀 나는, 흠흠 하며 헛기침을 내뱉곤 피팅룸을 빠져나왔다. 그러자 다른 것을 살펴보던 히마리가 천천히 내게로 고개를 돌렸고 그대로 그녀는 행동을 정지했다.
“…….”
“…….”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아무런 말도 없었다.
침묵을 유지한 채로 나는 머쓱해하며, 히마리는 아예 턱에 손을 얹은 채로 집중해서 나를 살펴본다.
……일을 할 때보다 더 집중하는거 같은데.
“어, 어때요……?”
“……괜찮네요. 정말로요. 마음에 들어요.”
“그럼, 다행이네요…….”
결국 분위기를 버티지 못한 내가 묻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히마리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궁금하다는 듯이 물어왔다.
“나나시. 이렇게 이쁜데 왜 교복만 입는거에요?”
“……교복이 편해서 그런건데.”
“흐음. 그런가요.”
의미심장하게 비음을 내는 히마리.
그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나는 이내 히마리가 지갑 속에서 카드를 꺼내드는 모습을 보고는 경악했다.
“히, 히마리 선배?!”
“어머. 왜 그러나요, 나나시?”
“계, 계산 제가 할게요. 제 옷인데 왜…….”
“아뇨. 제가 안사면 나나시가 그 옷을 안입을거 같아서요. 분명 교복이 편하다며 또 입겠죠.”
“…….”
어떻게 알았지.
솔직히 지금 당장이라도 부끄러워서 벗고 싶다.
…물론, 그런 이유 뿐만은 아니었다. 선배한테 대신 결제하게 시키는게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다.
“하, 하지만…….”
“걱정말아요. 사랑스런 후배를 위해 이 정도도 못해주겠나요? 이번에는 선배 노릇을 하게 해주세요.”
“으음…….”
“정 신경쓰이면 다음번엔 나나시가 저에게 뭔가 선물해주면 될 일 아닌가요?”
그렇긴 한데 말이다.
나는 고민을 거듭하다 이내 한숨을 내쉬며 물러섰다.
그래. 히마리가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는데 몇 번 정도는 입고 다녀줘야지…….
결국 나는 정체성을 포기하기로 했다.
“후후, 좋네요. 그럼 결제해주세요.”
“네, 카드 받았습니다~”
결국 십만원이 넘어가는 거금이 히마리의 카드에서 빠져나가는 모습을 본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고마워요, 선배. 잘 입고 다닐게요.”
“자주 입어주지 않으면 삐질지도 모르니까요?”
“네…….”
나는 침울하게 대답했다.
앞으로 히마리 앞에서는 몇 번 정도는 이 옷을 더 입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우리 둘의 외출이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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